[앵커] 잘 나가던 사업가가 IMF를 겪으면서 회사와 집을 잃었습니다.
갈 곳이 없어서 비닐하우스에 기거하면서도 묵주를 놓지 않은 덕분에 지금은 어엿한 교회의 봉사자로 거듭난 평신도가 있습니다.
서울 명동본당 이재문 도미니코 사비오씨의 사연인데요.
이힘 기자가 만났습니다.
[VCR] “그 때를 생각하면 가끔 감회에 젖어서 저도 모르게 좀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서울 명동주교좌본당 이재문 도미니코 사비오씨가 20여 년 전 겪은 고통스러웠던 인생 이야기를 시작하다 감회에 젖습니다.
의정부교구가 서울대교구에서 분리되기 이전인 1990년대 이씨는 원당본당 사목회에서 봉사하며 기쁘고 행복하게 살던 신앙인이었습니다.
90년대 초반 일산 신도시가 건립되고 많은 인구가 유입되면서 이씨의 아내는 의류사업으로, 자신은 부동산 컨설팅 사업 등으로 막대한 부를 이뤘습니다.
그러다 터진 IMF는 이씨와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습니다.
회사도 집도 모두 잃고 비닐하우스에서 지내야 했던 겁니다.
그런데 불행은 멈출 줄 몰랐습니다.
<이재문 도미니코 사비오 / 서울 명동본당>
“(비닐하우스) 계약금을 주러 가다가 뒤에서 조금 큰 차가 들이받으면서 제 처가 타고 가던 차가 중앙선을 넘어버린 거예요.”
종업원의 경차를 타고가다 5중 추돌사고를 당한 이씨의 아내.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지만 무보험 차랑이어서 병원비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신용불량자에겐 건강보험 적용도 되지 않은 겁니다.
그런 와중에 이씨의 아버지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고.
누나를 찾아온 이씨의 둘째 처남은 누나의 회사도 집도 모두 사라진 데다, 연락도 닿지 않자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이재문 도미니코 사비오 / 서울 명동본당>
“제 처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묵주기도를 하더니 처남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더니 그때는 묵주를 내려놓더라고요. 하느님, 하느님 하셔도 너무 하십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실 수 있느냐고 묵주를 내려놓는데…”
밤엔 쥐가 들끓고, 눈이 오면 무너질까 전전긍긍했던 비닐하우스에서의 삶은 평탄할 리 없었습니다.
얼마 뒤엔 돌풍이 불어 이씨 가족이 머무는 비닐하우스만 찢겨나가는가 하면, 고양시 홍수로 보금자리인 비닐하우스까지 잠기는 일도 벌어집니다.
그럼에도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재문 도미니코 사비오 / 서울 명동본당>
“(홍수로 비닐하우스가 잠겼는데) 그런데 우리 잠자는 방은 남아있더라고요. 방은 남아 있으니까 하느님 감사합니다.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오지 뭐 달라는 기도는 나오지도 않아요.”
지인과 신자들의 도움으로 다시 재기한 이씨.
감사의 기도 이후 3년간 이어진 비닐하우스에서의 삶은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노점상을 하며 다시 돈을 모아 임대아파트를 마련했을 때, 그의 가족들은 “여기가 천국이구나”하며 감격스러워 했습니다.
지금은 서울 신길동 살레시오회 돈보스코센터에서 작은 성물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30여 년 전 서울대교구 남성 제126차로 체험한 꾸르실료에 이제는 선배 봉사자로서 신앙체험을 전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자신과 가족들이 겪은 신앙체험이야말로 평신도가 평신도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재문씨는 “신앙은 서로 나누면서 서로 더불어 성숙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재문 도미니코 사비오 / 서울 명동본당>
“신앙생활을 한다는 게 전부다 다름대로 열심히들 살고 있고 그렇게 때문에 어떻게 보면 좀 부끄럽지만 그래도 또 공유하는 부분도 있고 저도 또 함께 하면서 더불어서 성숙돼 나아간다는 것을 많이 알게 되는 것 같아요.”
CPBC 이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