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무르익어가는 11월 이맘때가 되면 성당은 조금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이유는 수학능력시험 때문입니다. 수능을 앞둔 입시풍경은 저희 가톨릭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각 본당에서는 수능 기도모임을 시작합니다. 자녀들을 생각하는 부모들의 기도, 인생의 한 고비를 힘겹게 넘어가고 있는 수험생 그리고 그들과 함께 미사와 기도로 응원하는 사제와 수도자. 모두의 간절함이 기도가 되는 요즘입니다. 그런데 요즘 수능풍경은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바로 의대 열풍 이야기입니다.
2024년도 대입 수시모집 결과는 한 마디로 ‘의대 열풍’이었습니다. 한 입시학원에 따르면 내년도 대입 수시모집 원서접수에서 주요 10개 대학 의대 평균경쟁률은 46대 1에 달했습니다. 인하대 의대 661대 1, 가톨릭대 의대 논술전형 227대 1을 나타내는 등 올해도 의대열풍이 이어졌습니다. 의대뿐만 아닙니다. 의학계열은 모두 최고의 경쟁률을 보입니다. 가톨릭대 약학과는 올해 수시 원서 접수에서 289대 1의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지금 대학 서열의 꼭지점에는 일명 스카이 대학이 아닌 의과대학이 있습니다.
의대 열풍은 지금 한국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줍니다. 각자도생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심한 경쟁은 청소년들이 현실 안주라는 꿈을 꾸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어려운 환경이라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일명 ‘개천에서 용’이라는 교육 사다리가 무너진 것도 한 몫 합니다. 미래를 꿈꾸는 수험생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도전보다 현실의 사회적 대우와 경제적 안정을 선택합니다. 그 결과가 의대 열풍으로 들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생겨난 현상이 ‘초등학생 의대반’입니다. 대치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의대 진학을 바라는 초등학생들이 선행학습으로 수학 미적분을 풀고 있습니다. 더욱이 올해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시험 킬러 문항 배제’와 쉬운 수능이 예상 되자 재수생까지 ‘의대 진학’에 뛰어들었습니다.
세금으로 지원하는 영재학교 졸업생들도 장학금을 반환하면서까지 의학계열 학과로 진학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의대정원확대’라 정부의 발표는 의대열풍을 의대광풍으로 만들었습니다. 정부는 입시학원을 ‘사교육 카르텔’ 범인으로 몰아붙이지만 사교육은 지금 최고의 호항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 이태석 신부를 기억합니다. 고 이태석 신부는 사제가 되기 전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였습니다. 하지만 이태석 신부는 다른 평범한 의사들처럼 살기를 거부합니다. 운명처럼 하느님을 만나 사제가 된 후 아프리카 남수단의 톤즈로 갑니다. 의사 신부 이태석은 낮은 곳에서 헌신하며 당신이 배운 의술이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줍니다. 이태석 신부는 돈과 명예가 아니라 희생과 사랑이 세상에 더욱 필요한 일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의사 신부 이태석이 뿌린 사랑의 씨앗은 지금도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습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서울대 말고 무조건 의대>입니다. 부와 명예가 아니라 정의와 사랑을 꿈꾸는 수험생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