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지금 _ 나와 너 그리고 우리 (5)
요즘처럼 젊은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비관적으로 표현하는 속어들이 넘쳐나는 때도 없을 것이다. 처음에 등장한 용어는 ‘삼포세대’였다. 즉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뜻이다. 좀처럼 연애를 하지 않으려 하고, 만일 연애를 한다 하더라도 결혼을 하지 않으려 하며, 결혼을 하더라도 출산을 포기하려는 사회현상을 일컬었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좌절감은 이 용어로 정리되지 않았다.
삼포에 덧붙여 취업과 내집마련을 포기한 오포세대, 여기에 건강과 외모까지를 포기한 칠포세대, 희망과 인간관계까지도 포기했다는 구포세대, 마지막으로 꿈도 없고 희망도 없는 이 삶 자체를 포기한다는 10포세대(완포/전포세대) 등의 용어가 줄줄이 등장했다.
이렇게 포기할 것은 계속 나오는데 숫자로 표현하기도 귀찮다는 의미에서 2010년경부터는 N포세대라는 말로 이전의 모든 용어들을 통칭하고 있다.
상담을 하다보면 요즘 청장년들의 절망감과 무기력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자신은 흙수저로 태어나 평생을 벌어도 번듯한 집을 마련하기가 힘드니 결혼을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수저계급론 신봉자들, 아이를 기르기 위해 양육과 교육비로 1인당 최소 2억원은 필요한데 그런 돈이 없으니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딩크족들(Double Income, No Kids: DINK), 인생은 어차피 한 번뿐이니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죽겠다는 욜로족들(You Only Live Once: YOLO)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언뜻 보면 이들의 생각은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현재를 충분히 즐기자(Carpe Diem)”라는 의미처럼 긍정적인 면도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까짓거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죽기밖에 더하겠어?” “뒷일은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대로 살자”는 자포자기적 의미도 숨어 있는 것처럼 보여 안타깝다.
이런 젊은이들의 어두운 자화상을 그대로 반영한 통계가 있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 Pew Research Center는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전 세계 17개 선진국(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한국, 일본 등) 성인 18,8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와 온라인 설문조사를 최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당신이 삶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17개 나라 중에서 14개 나라 국민이 “가족(38)”이 가장 소중하다고 응답했고, 그 다음으로 “직업(25)”과 “물질적 행복(19)”을 꼽았다. 하지만 한국은 “물질적 행복(19)”을 1위로 꼽았다. 이는 17개 조사대상 국가 중에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해당하는 결과였다. 또한 한국은 가족, 친구, 직업, 종교에 대해서 의미를 가장 적게 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이 설문조사에서는 한국인들만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가 드러났다.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고를 때 세 가지를 선택하라고 했는데, 유독 한국인들은 세 가지 중 하나만(즉 “물질적 행복”)을 고른 사람들(62)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한국인들은 마치 다른 가치들은 다 필요 없고 사실 돈만 있으면 나머지 문제들은 자연적으로 해결된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마태 6,24)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요즘처럼 더 깊게 다가오는 때도 없다. 자본주의의 병폐인 물질만능주의에 희생되어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을 지켜보면서 우리 신앙인들이 먼저 회개해야 한다는 깊은 자성을 하게 된다.
사실 N포세대들의 비관적인 목소리 이면에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 그만큼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열망이 숨어 있다. 마치 자살의 징후가 죽고 싶다는 욕구가 아니라 누군가 자신을 살려달라는 심리를 반영하는 것과 같다. N포세대의 절규는 이런 자살심리의 반영으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미래세대는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해 더 이상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신앙인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기승전-돈이 아닌 기승전-신앙의 삶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글 _ 박현민 신부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목 상담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전문가연합회에서 각각 상담 심리 전문가(상담 심리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전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성필립보생태마을에서 상담자의 복음화, 상담의 복음화, 상담을 통한 복음화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상담의 지혜」, 역서로 「부부를 위한 심리 치료 계획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