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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사도의 등장 - 역사를 바꾼 290km의 여정

[월간 꿈 CUM] 예수, 그 이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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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스쿠스에서 탈출하는 바오로 및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나는 바오로.(이탈리아 시칠리아 팔레르모 노르만 궁전 팔라티나 소성당 모자이크)

사울은 아직도 스테파노가 죽어가면서 보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스테파노는 죽음 앞에서도 결연한 모습을 보였다. 저렇게 사람이 독할 수 있나…. 이런 사람들을 놔뒀다가는 유대교에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었다. ‘율법을 수호해야 해!’ 뼛속까지 바리사이파인 사울은 직접 예수를 믿는 이들에 대한 박해에 나서기로 했다. 사울이 보인 것은 살기였다.(사도 9,1 참조) 사울은 대사제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신앙인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습니다.”(사도 9,2 참조) 그리고 즉시 행동에 나섰다.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사도 8,3)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사울이 그리스도교인 체포를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 다마스쿠스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예루살렘에서 다마스쿠스까지 거리는 오늘날 포장 도로 기준 360km, 지름길로 걸어서 갈 경우 약 290km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현지 도로 사정을 감안할 때 5시간 정도 걸리는데, 구글 지도에서 도보 소요 시간을 계산해 보니 약 60시간(3일) 걸린다고 안내한다. 이는 성경에 나오는 기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출발한 후 ‘3일째 되는 날’, 다마스쿠스에 거의 다 왔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였다. 순간 사울이 쓰러졌고, 동시에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사도 9,5-6)

사울은 일어섰을 때,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축해서 인근 마을로 데리고 갔다. 사울이 받은 정신적 충격은 엄청났다. 그는 물을 마시지도, 음식을 먹지도 않았다. 그때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사울을 찾아와 안수를 하자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사울의 시력이 돌아왔다. 이후 사울은 완전히 달라진다.

고려의 승려 지눌(知訥, 1158?1210)은 “뱀은 물을 마시고 독을 만들고, 소는 같은 물을 마시고 우유를 만든다”(蛇飮水成毒 牛飮水成乳, 사음수성독 우음수성유)고 했다. 아르메니아 속담에도 “뱀이 독을 빨아내는 같은 꽃에서 벌은 꿀을 얻는다”(The bee gets honey from the same flower where the snake sucks her poison)는 말이 있다.
다마스쿠스로 향하던 길에서 있었던 ‘성 바오로의 회심’ 사도 성 바오로. 그리스 필리피 리디아 기념성당(카라바조, 1600~1601, 로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물을 마시고 독을 만들어 내던 바오로가 이제 우유를 만드는 소, 꿀을 얻는 벌이 된다. 살기에 가득차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그가 이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사도 9,20)이라고 선포하기 시작했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눈이 보이지 않다가 보게 됐고, 쓰러졌다가 일어섰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정반대의 길을 새로 간다. 그래야할 이유는 없었다. 바리사이파라는 보장된 지위가 있었다. 로마 시민권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리스어, 히브리어, 아람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재원이었다.(사도 21,37;22,2 참조) 명예와 부, 안락한 삶도 보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울은 그 모든 것을 버린다.

사울은 이제 바오로 ‘사도’가 된다. 유대인들은 당황했다. “저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자들을 짓밟은 자가 아닌가? 또 바로 그런 자들을 결박하여 수석 사제들에게 끌어가려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닌가?”(사도 9,21) 당혹스러운 감정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유대인들은 배신자 바오로를 없애 버리기로 공모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바오로는 밤에 몰래 성벽에 난 구멍으로 탈출해야 했다.(사도 9,25 참조)

탈출에 성공한 바오로는 그 길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사도들을 찾았다. 그러나 사도들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한다.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바오로를 변호하고 나선 사람이 바르나바다. 그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사도 11,24 참조) 그는 직접 사도들에게 바오로를 소개하고 그동안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그제야 사도들은 바오로를 받아들였다. 바오로의 열정은 선배 사도들 못지않았다. 바르나바는 이후 바오로를 안티오키아로 보내 선교 활동에 나서도록 한다. 그런데 이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문제가 터졌다. 


글 _ 우광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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