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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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사소한 것이 기적이다 (정운필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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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지역의 있는 한 경당 전경. 옛날에는 본당이었을지도 모른다.
폰테 데 리마 천사들의성마리아성당에서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 정운필 신부 제공



산티아고길을 걸으면서 될 수 있으면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 신분으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오해의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피치 못할 때가 있다. 외진 숙소는 식사를 선택할 수 있는데, 그럴 때면 다른 일행과 식사를 같이 하면서 대화하다 보면 신분이 들통 난다. 특히 자녀와 직업 이야기를 할 때 그렇다.

미국 네브래스카에서 온 한 자매가 신부임을 알고 화들짝 놀라면서 마침 토요일이라 미사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산티아고길에 사제는 지역 주교의 승인 없이 미사와 고해성사를 할 수 있다고 들었다. 순례를 위한 일종의 공용 권한이다. 하지만 언어는 둘째치고, 미사 도구도 없고 마음의 준비도 돼 있지 않아 극구 사양했더니 몹시 아쉬워한다. 그래서 신분을 숨기려 했던 것.

웬만한 도시의 성당은 토요 주일 미사가 있고, 숙소에서 근처 성당과 미사 시간을 알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외진 곳은 경당조차 없다. 일행은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다. 미사를 할 수 있다면 물론 그 사람들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편리하겠지만, 대충 의무를 치르듯 하기보다 일정을 바꾸더라도, 그래서 불편하더라도 성당 미사도 순례에 포함하는 것이 좋겠다. 준비되지 않은 마음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미사를 부담으로 만들게 된다.

‘알베르게’라 불리는 숙소는 다양한 형태로 있다. 시립(municipal), 본당(parroquial), 수도원(monasterio, 옛 수도원 개조), 사설(privado). 이 순서대로 저렴하고 시설 좋은 숙소다. 포르투갈 지역은 거의 다 사설 숙소인 것 같다. 숙소는 보통 오전 8시 전에 떠나야 하고, 오후 2시부터 들어올 수 있다. 숙소에 도착하면 해야 할 것들은 체크인(Passport 필요), 침대 배정, 일회용 커버, 신발 햇빛 건조, 침대 정리, 침낭 건조(담요가 있는 숙소도 있지만 추천하지 않음), 샤워, 빨래 순이다. 포르투갈 지역은 세탁기나 건조기가 웬만해서 없으니 손빨래해야 한다.

숙소 예의가 있는데, 한낮에도 쉬는 사람이 있어 그것을 지켜야 하지만, 밤 8시 이후 침실에서 대화 금지, 10시에 소등 및 취침, 이 시간 후 한 시간 동안 이동이 금지된다. 이 코스에서 포르투갈 지역이나 스페인 지역도 모르는 것인지,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잘 안 지킨다. 어떤 곳(Caldas de Reis)은 주말 저녁에 숙소 바로 옆에서 밤새 시끄러운 음악 소리로 잠 못 이룬다. 그러면 다음날 몽롱한 상태로 힘들게 걸어야 했다.

프랑스길은 최소 30일 이상 걷기에 주일을 네 번 지나야 하지만, 훨씬 짧은 포르투갈길은 12일 내외로 한두 번 주일을 지나야 한다. 웬만한 도시에 있는 성당은 토요 주일미사가 있다. 주일도 걸어야 하는데 자기 걷는 시간에 맞는 미사를 하는 곳이 없다. 어쩔 수 없이 그 성당의 미사 시간에 맞춰 일정을 세워야 한다. 지도 검색으로 폰테 데 리마(Ponte de Lima, 중세 다리가 여전히 있는 곳)라는 도시에서 본당(Santa Maria dos Anjos)을 찾는다. 그러나 어디에도 미사 시간 안내는 없었다. 리뷰란에 어렵게 미사 시간을 찾는다. 11시다. 지도상 약 15㎞, 한 시간에 4㎞를 걸으니 네 시간이면 충분해서 아침 7시(본인의 루틴은 더 일찍 출발)에 떠난다.

아뿔싸! 지도와 실제 코스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었던 것. 나름대로 열심히 그리고 기쁘게 걸어갔는데도 성당에 도착하니 11시 35분! 성가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포르투갈 지역 성당은 아무리 작아도 제대는 화려하다. 나름 노력했다고 자부하면서 들어서니 성가가 막 끝났는데 이어 성호경을 한다. 입당 성가였고, 11시 30분 미사였던 것! 이 기쁨이란! 저쪽을 보니 전날 미사 해달라는 자매들이 나에게 손을 흔든다. 훨씬 일찍 떠났는데 벌써 와 있었다. 아침에 헤매는 동안 추월했나 보다. 이 기쁨을 아냐고? 미사를 거를 뻔했는데, 온전히 미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별거 아니라 생각하겠지만, 나에겐 기적과 같아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기적은 별거 아닌 것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여기도 스페인처럼 미사 참례한 현지인은 많았지만, 성체를 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순서 기다리다 영성체를 못 할 뻔했다. 제단으로 오르는 사제에게 손을 내밀었다. 왜 이들은 미사에 와서는 영성체를 안 할까? 특히 나이 든 분들, 그들 중에서도 특히 형제들, 그리고 젊은 커플은 거의 성체를 모시지 않았다. 왜 그럴까?

 


정운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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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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