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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빈 평화칼럼] 하늘나라 여행 가방

서종빈 대건 안드레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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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옷을 갈아입는 늦가을에 삶과 죽음을 묵상하는 위령 성월이 있다. 11월은 1년 중 가장 쓸쓸한 달이다. 일상의 고단함에 외로움이 겹친다. 인생사 새옹지마(人生事 塞翁之馬),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이 가장 많이 회자한다. 어디로든 떠나가고 싶어 한다. 여행 가방을 챙긴다. 넣고 빼야 할 물건을 고민한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면 늘 후회한다. 사용하지 못한 물품을 보면서 속절없는 미련이 남는다. 이사를 하거나 가재도구를 정리할 때도 과거의 물품을 선뜻 버리기가 어렵다. 집착이 고통을 낳는다.

삶을 반추하고 죽음을 묵상한다. 천국에서 지상으로, 지상에서 연옥으로 기도가 이어진다. “주님, 깊은 곳에서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주님, 제 소리를 들으소서. 제가 애원하는 소리에 당신의 귀를 기울이소서. 주님 당신께서 죄악을 살피신다면 주님,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시편 130,1-3)

우리는 통공(通功)의 신비를 믿는다. 통공은 세례를 받은 모든 이가 일치 안에서 서로의 공로를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다. 천상의 성인들과 지상의 인간들 그리고 연옥의 영혼들이 서로의 공을 나누고 영적 도움을 주고받는다. 삶과 죽음은 모두 하나로 일치돼 있다.

‘살아있는 이들’은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연옥 영혼이 남은 죄를 완전히 씻고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이들을 위해 우리는 미사를 봉헌하며 속죄하고 기도와 희생, 선행을 실천한다.

11월에는 지상으로 향하는 천국의 기도도 깊어진다. 우리는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는다. ‘성인들의 통공’은 ‘성인들’이 ‘상호 친교’를 이루어 가진 바를 ‘함께 나눈다’는 의미다. 천상의 성인들이 지상의 순례자를 돕는다. 우리는 그들에게 전구를 청한다. 하느님께 전해 달라는 청탁의 기도이다. 천상의 영혼이여! 머지않아 하늘길로 향하는 이 죄인의 기도를 꼭 기억해 주소서.

누구나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끝마치는 선생복종(善生福終)을 원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뜻밖의 재앙과 사고로 비명횡사(非命橫死)하고 질병의 고통 속에서 현세를 마감한다. 그렇다고 지상의 삶이 ‘지상의 지옥’은 아니다. 오히려 ‘지상의 연옥’이다. 현세에서 겪는 고통은 사후에 우리를 정화하고 천국을 준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마태 5,3-10)이라고 말씀하셨다.

누구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맨주먹이다. 재물도 명예도 권력도 어느 하나 가져갈 수가 없다. 그러나 하늘나라 여행 가방에 꼭 담아야 할 것이 있다. 현세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인생의 성적표’이다. 죽으면 육신을 떠난 영혼이 심판을 받는다. 현세에서 행한 나눔과 선행, 정직과 정의로 평가되고 그 종착지는 천국이나 지옥이다. 연옥에서 정화된 영혼은 천국으로 간다. 구원은 천국에서 완성되고 우리는 영원히 하느님과 함께한다. 하늘나라에 갈 때 지참해야 할 내 영혼의 성적표는 지금 어떨까?

선산에 있는 아버지의 묘소를 찾았다. 절을 하고 잠시 잔디에 누워 하늘을 본다. 어디쯤 계실까? 귀천할 때 나의 하늘길은 누가 배웅할까? 하늘나라 여행 가방에는 무엇을 담아야 할까? 나는 하늘나라 어디쯤 가 있을까? 내려오는 길에 바로 옆에 모셔진 친족들의 묘소에도 발걸음을 멈춘다. 성만 같을 뿐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위령 기도를 바친다.

나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과연 우리는 선종할 수 있을까? 천상 영혼이 누구든 그들을 향한 나의 기도가 많을수록 현세의 우리는 성화되고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다.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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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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