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 유골 봉환을 추진하는데요. 미사 집전을 해 주실 신부님을 모시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기록되지 않은 기억 군함도」를 쓴 이혜민 작가가 불쑥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강제징용 피해자 심재선씨와 그 벗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심재선(1923~2007): 1943년에 일본에 끌려갔다. 아버지가 징용대상이었는데 대신 나섰다. 나가사키현 탄광에서 일했다. 조선인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매를 맞고 굶주렸다. 해방 후 돌아오려 했으나 조선인을 바다에 던져 버린다는 소문에 도저히 떠날 수 없었다. 혼자 살았다. 신장병으로 투병했다. 성당에 다니는 미쓰우라 부부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 죽은 후에는 뼈를 한국으로 보내 달라고 야마시타씨에게 부탁했다.
-미쓰우라: 심재선씨와 형제처럼 지냈다. 성당 납골함에 그를 모셨다. 언젠가 그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1년에 두 번 재선 형제를 위해 연미사를 드린다.
-야마시타: 나가사키현 다카시마지구 노동조합 대표였다. 장례를 치렀다. 2007년에, 강제징용진상규명네트워크 사무국장 후쿠도메씨와 한국에 방문해 재선씨 동생을 찾았다. 동생은 사정상 유골을 인수할 수 없으나 국내 안장을 추진해 주면 참배하겠다고 했다. 그 후 후쿠도메씨가 사망해 유족과의 연결이 끊겼다. 나(야마시타)도 2019년에 뇌경색으로 언어장애와 반신마비를 겪었다. 그래서 이시마루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시마루: 나가사키현의 공무원 노조에서 일했다. 천황의 전후 책임과 식민지 피해에 관심이 많다. 2019년 후쿠오카 대한민국 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영사관에서는 유가족 소재를 확인하는 데 협력하겠다고 했으나 이후 소식이 없다. 2023년 10월에 기무라씨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재선씨 고향 면사무소도 가고 이장도 만났지만, 유족정보는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서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기무라: 한국어 통역을 한다. 이번에 이시마루씨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군함도 취재로 인연이 된 이혜민 작가를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재선씨가 죽어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돕고 싶다.
이 노인들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재선씨의 마지막 염원을 이뤄줄 방법을 지금도 찾고 있다. 유골 봉환이 성사돼 한국에서 재선 형제를 위한 미사를 드릴 날이 올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낙관한다. 이 일이 중단되지 않고 이제껏 선한 이웃들의 손을 거쳐 여기까지 온 것은 주님이 동행하시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향규 테오도라(뉴몰든 한글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