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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한담] 웃는 도시를 다녀와 / 정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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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기차를 타고 낯선 도시에 갔다. 인문학 특강에 초대를 받았다. 올여름 산문집 「다시 시작하는 경이로운 순간들」과 「나를 기쁘게 하는 색깔」이 출간되었는데, 그 책을 읽고 연락을 주셨다. 그래서 나는 시의 경이와 기쁨을 이야기하러 거대한 크레인이 줄지어 서 있는 도시에 갔다. 강의 장소에 도착하니 웃는 얼굴들로 강의실이 환하다.

‘경이’(wonder)를 말하면 대개 대상에 대한 놀라움, 찬탄만 생각한다. 하지만 경이는 다른 중요한 뜻이 또 있는데, 바로 회의하고 의심하는 불확실한 감정이다. 당연하고 익숙한 것에 우리는 놀라지 않는다. 찬탄과 경외는 뜻밖의 대상을 새로 만났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시의 언어는 일상에서 굳어진 딱딱한 의미를 풀어주고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게 한다. 시는 어쩌면 기도와 닮았다. 시도 기도도 반복이 많다. 둘 다 리듬의 언어다. 무엇보다 시와 기도는 맑은 지향이 있다. 무언가를 향하는 마음은 그대로 숭고하니까 말이다. 익숙한 것들을 당연하게 보지 않고 궁금증과 소망을 함께 품는 시와 기도를 나란히 놓고 보니 문득 한나 아렌트의 말이 생각난다. 유대인 대학살의 주범을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평범은 비루함, 상투성에 더 가깝다. 낡은 마음, 질문 없이 무작정 따라가는 마음 말이다.

경이는 이와 다르다. 경이는 놀라움이고 질문이다. 찬미하는 힘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자존감이 바탕이 된다. 질문하고 궁금해 하고 찬미하는 이 덕목들은 모두 사랑의 행위와 연결된다. 이렇게 경이와 기쁨을 중심으로 시가 전하는 기도와 영성의 힘을 이야기하다보니 두 시간이 금방 지났다. 강의가 끝나는 질의응답 시간에 한 분이 내 표정에 대해 물으신다. 어떻게 그렇게 내내 웃을 수 있느냐고.

내 대답은 단순하다. 죽음을 생각하면 늘 웃게 되지요. 이 순간이 언제 끝날지 모르고 다시 오지 않는다 생각하면 지금, 여기를 기쁘게 살게 된답니다. 시 읽는 것도 비슷해요. 전쟁으로 죽어가는 아이들, 고립된 청년들, 늙어가는 어르신들, 각자 짊어져야 할 슬픔이 너무 많은 세상이라 저는 자주 기도할 때 울음이 나와요. 하지만 그래서 더욱 찬찬히 시를 읽으며 기쁨과 경이를 생각한답니다. 고맙다며 그분 얼굴이 환하게 피어난다.

또 한 분은 집에 안 읽은 책이 많아 책을 사기 주저된다 하신다. 대답은 또 간단하다. 그냥 계속 사서 어떻게든 보세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썩어요. 아파트며 명품이며 건강한 몸이며 드러나는 것만 치장하느라 우리는 속이 썩는 줄도 모르잖아요. 계속 읽고 걷고 눈 떠야 해요. 내 간명한 대답에 그분도 활짝 웃으신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시편 1,2) 시편의 말씀을 새기며 낯선 도시에서 사랑을 나누고 돌아오니 하루가 다 갔다. 그래도 참 좋다. 처음부터 끝까지 경이와 기쁨이 함께했으니. 삭막한 공업 도시가 아니라 울산은 이제 내게 ‘웃는 도시’라는 새 이름이 붙었다.
정은귀 스테파니아(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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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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