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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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어디에나 있는 나만의 산티아고길(정운필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산티아고 포르투갈길(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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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주교좌 대성당 전경. 정운필 신부 제공


사람들은 유튜브나 대화에서 주로 성공한 이야기만 듣는다. 하지만 이 길에 실패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모두 완주한 것처럼 보이나, 이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인생이 실패한 것이 아닌데도 실패담을 나누지 않는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신체적으로 몸이 따르지 않는 것(수포나 염증)과 정신적으로 의미 상실(단순함과 외로움),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이유다.

비가 내려도 걸어야 한다. 하지만 비 맞은 몸으로 걷기 힘들 뿐 아니라 자칫 물집이 쉽게 잡힌다. 일단 물집이 생기거나 염증이 생기면 거의 실패한다고 봐야 한다. 비온다고 숙소에 마냥 있을 수도 없다. 그리고 예보대로 비가 오지도 않는다. 출발부터 준비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우기가 아니면 대부분 비는 갑자기 내린다. 젖은 운동화는 말리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샌들이나 방수용 신발을 신고, 방수 덮개 배낭에, 활동이 편안하고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는 판초의 같은 것을 입는다. 예상치 못한 비가 오면 최대한 빠르게 갈아입고 장비를 갖추어야 한다.

포르투갈길은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고 일반 집 처마도 우리나라처럼 길지 않다. 그래서 배낭엔 쉽게 꺼낼 수 있게 우의와 샌들을 입구 안쪽에 넣고 다닌다. 이는 예보가 없어도 항상 그래야 한다. 우연히 식당이나 카페를 만나면 좋지만, 산과 들에서 비를 만나면 최대한 빠르게 조치해야 한다. 인생이 그런 것 아닌가. 비가 온다고, 눈이 많다고 잠시 쉬어갈 수 없는 노릇 아닌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고, 가야만 한다면 최소한의 상처만 남도록 하는 게 지혜로운 삶이 아닌가.

일단 물집이나 염증이 생기면 약국에서 알아서 약을 주는데, 임시적이다. 한 번 잡힌 물집은 쉬이 아물지 않는다. 염증 약도 일시적 진통의 효과만 있는 것이지 치료를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강한 의지나 강한 체력도 이것들 앞에선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생기기 전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물집을 막기 위해선 발을 항상 건조한 상태로 만들고, 염증 예방을 위해서 내리막길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절대 뛰지 않는다.

처음 프랑스길을 걸었을 때, 산맥을 넘어 내리막길에 아주 느린 노부부가 앞에서 걷고 있었다. 보통 걸음으로 그들을 지나면 무안할 것 같아 돌밭에도 뛰어 추월했다. 며칠 아무 증상이 없었지만, 얼마 후부터 통증이 조금씩 있더니 더 지나서는 의지대로 걷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거의 포기할 뻔했지만, 마지막 노력으로 택시를 타고 대도시 약국으로 갔다. 통증, 염증에 관한 스페인 단어를 찾아 외우면서 갔는데, 약국에서 발목을 가리키며 아픈 표정을 지었더니, 웃으면서 진통제와 근육 이완제, 연고를 주었다. 그래서 다음날 다시 걸을 수 있었지만, 통증이 완전히 없어지기까지 순례가 끝나고도 거의 한 달 이상 걸렸다.
 
한국 순례자를 만난 카페.


열하루 동안 걸으면서 한국 사람은, 젊은 친구 오로지 한 명 만났다. 어떤 카페에서 쉬고 있는데, 사람들이 많아 한국 사람이냐고 물으면서 동석했다. 일정 변화나 차질이 싫어서 누구와도 친해지기를 주저했지만, 그럼에도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도 나누었다. 그 친구도 나처럼 휴가와 연휴를 이용해 왔지만, 아주 많이 힘든 것 같았다. 먼저 일어서며 “끝까지 부엔 까미노!”하며 그날의 남은 일정을 마쳤다.

숙소 정리를 다 하고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 웬일로 그 친구가 생각나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대화를 했으면서도 정작 연락처나 묵을 곳, 심지어 이름도 성도 몰랐다. 속으로 ‘그러니 네가 연애를 못 하지!’라고 자조하면서 만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할 수 없었고, 그것은 다음 날까지 영향을 미쳤다. 생각지도 못한 외로움이 생긴 것이다. 이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나머지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그 순간만큼은 순례의 의미도 목적도 잊는, 그야말로 ‘어두운 밤’ 상태가 된다. 그런 일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도록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이전과 다른 것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서 그런지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할 때 감동이 전보다 더 진하게 밀려왔다. 도착 이틀이나 사흘 전에 울컥함이 있고 당일은 덤덤했었는데, 도착한 그 순간에 눈물. 이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 졸업이 아니라 산티아고 대성당의 순례자 미사(07:30, 09:30, 12:00, 19:30. 사제는 간단하게 신원을 증명하면 제단에서 미사를 함께 할 수 있다)의 제단 위에서 묵상한다. 이제는 더 안 올 것이며 새로운 시작이 시작되었다고…. 이제는 갈리시아 지역의 산티아고가 아니라 어디에나 있는 나만의 산티아고를 향한 진짜 여정이 그때부터 시작되었고, 그런 연유로 흐를 뻔한 환희의 눈물이었다.

 

정운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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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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