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0월 6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에서 첫 사형집행이 이뤄졌다. 이날 하루 동안 15명의 사형수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다음 해 11월에는 19명 사형집행을 했다.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시민단체들이 강하게 항의했지만, 문민정부는 멈추지 않았다. IMF 사태로 나라가 부도난 그 순간에도 사형집행을 했다. 1997년 12월 30일, 전두환·노태우 정권도 감히 하지 못한 23명 동시 사형집행이 이루어진다. 더욱이 이번 집행은 사형에 반대 신념을 가진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였다. 물러나는 권력이 밀어붙인 것이다.
이후 사형은 집행되지 않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박근혜 정부 동안 한 차례의 사형집행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말할 것도 없다. 10년 이상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대한민국은 국제 앰네스티가 선정한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이 되었다. 그렇게 저 야만의 무덤 속으로 들어간 줄 알았던 국가폭력의 대표적 형태인 사형제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요즘 ‘느린 사형’ 또는 ‘고문’이라 불리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도입을 밀어붙이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다. 사형제 유지를 전제로 한 종신형이다. 대법원은 사형제가 유지된다는 이유로 사실상 반대한다. 위헌의 소지가 높다는 것이다. 한국천주교회 입장도 반대다. 가석방의 희망이 없는 수형자는 교화(敎化)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벌의 목적은 교정·교화이지 복수·응보(應報)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한 장관의 태도는 단호하다. 한 장관은 “영구히 격리할 범죄자가 분명히 있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이후 한 장관의 다음 행보는 사형집행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고 한다. 정치인으로 변신을 준비하는 한 장관이 법무부 장관 마지막 업적(?)으로 사형집행을 챙긴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살아있는 권력과 맞섰던 것처럼 한 장관은 범죄 집단과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모습으로 선거에 나선다는 것이다. 무능한 모습만 보여준 윤석열 정권이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국면전환 카드로 사용하려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 장관은 최근 사형집행 시설을 갖춘 교정시설에 사형장을 점검하라고 명령했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유영철, 강호순 같은 일부 사형수를 지금 당장 사형집행이 가능한 서울구치소 한곳으로 몰아넣었다. 관련 부서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더욱이 사형제에 관한 한 장관의 태도는 굳건해 보인다. 사형제 관련 국회 질문에 한 장관은 사형제가 “범죄예방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는 말처럼 들린다.
여기에 최근 잇따른 묻지마 범죄와 흉악한 범죄도 사형집행 분위기에 기름을 붓고 있다. 현 정부에 우호적인 언론사들도 사형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만들며 칼춤을 추고 있다. 사형수들이 얼마나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사형수들에게 들어가는 세금이 얼마인지 같은 기사들이 보인다. 여기에 일부 시민들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으로 ‘살인에는 사형’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소리친다. 중국이나 중동 국가의 사형집행 소식에 우리도 이건 배워야 한다며 환호한다.
형법 41조에는 형(刑)의 종류가 나온다. 거기에 사형이 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사형은 법무부 장관의 명령으로 집행된다. 한동훈 장관의 명령이 사형집행에 필수라고 해도 윤석열 대통령의 결심이 필요하다. 사실상 윤 대통령의 결심이 없다면 사형은 집행되지 못한다. 윤 대통령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는 모른다. 다만 검사 출신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벌이는 사형집행이라는 칼춤을 멈추지 않으면 윤석열 정부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전국에 59명의 사형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