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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12만120번 / 박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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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으로 헤아려 보는 숫자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12만120번이네요. 이게 무슨 말일까 궁금하시죠. 어렸을 때 미사에 가지 못하면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33번 바치라고 말씀하셨고 그것을 ‘대송’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대송’은 부득이하게 정해진 의무를 지키지 못한 신자가 그것을 대신해 바치는 기도라고 합니다. ‘부득이한 경우’는 직업상 또는 신체적, 환경적 이유로 주일미사에 지속적이거나 일시적으로 참례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고 합니다. 주모경을 33번 바치는 이러한 ‘대송’의 방식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묵주기도나 성경봉독, 선행 등으로 대신하는 것도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모경 33번을 바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식입니다.

북녘 선교에 지향이 있던 저는 언젠가 읽은 글에서 해방 이후 북쪽에 있던 본당이 57개이고 신자가 5만5000여 명이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6·25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수가 남쪽으로 피난을 왔지만 여전히 북쪽에는 신앙의 경험을 간직한 분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그분들은 미사에 참례할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에 놓여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신앙의 경험을 간직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그분께서는 ‘대송’으로 주모경을 33번 바치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즉 1953년 정전으로부터 70년이 흐른 올해의 경우에는 단순 계산을 해 보면 33번×52주×70년=12만120번이라는 숫자가 도출됐습니다.

결국 어느 북쪽의 신자께서는 무려 12만120번이라는 주모경을 혼자서 바치고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저녁 9시 민족의 화해를 위해 바치는 주모경이 북녘 신자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아닐까라는 나름대로의 의미도 부여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민족의 화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갈라진 신앙의 형제들이 하나되길 희망하는 텔레파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천상의 성인과 지상의 인간, 그리고 연옥 영혼 사이에 통공을 우리가 믿듯이 비록 만날 수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남북 신앙인 사이의 기도가 마치도 텔레파시처럼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 봅니다. 어느덧 대송의 횟수가 12만120번이 돼 버렸습니다. 더 이상 이 숫자가 늘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정전 70년의 끝자락을 아쉽게 흘려보냅니다.
박천조 그레고리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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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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