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방지’, ‘회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84세 고춘자(안나)씨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값진 대가를 치르고 노인이 됐다”는 것이다.
고씨는 초등교육을 받지 못했다. 노년에 본당 노인대학에서 성경 필사 과제를 받았는데, 글을 쓸 줄 몰라 그리기 시작했다. 다른 이의 눈을 피해 과제물을 제출했다. 그래도 이러한 과정이 행복했다. 감사하게도 성경 필사를 하며 글자를 깨우치기 시작했다. 고씨의 소원은 힘닿는 대로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이다. 서울특별시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장 박진리(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수녀의 어머니 이야기다.
박 수녀는 11월 21일 서울대교구청에서 열린 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 정기세미나 ‘노년기 여성의 영성’을 통해 모친의 이야기를 전하며 노년의 가치를 강조했다. 박 수녀는 “2019년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 결과를 분석해보니 중년기 여성은 남성에 비해 혼자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지만, 노년기에 들면서 남성이 더 많아진다”며 “그러나 노년기 남성은 혼자 보내는 시간을 등산 등 보다 활동적인 것으로 여가를 즐기는 반면, 여성은 주로 우울감에 젖어 고립돼 있었다”고 했다. 평생 가정을 돌보다 노년을 맞은 여성들은 스스로 돌봄을 받아야 하는 주체가 된 것이 익숙지 않아 어려움에 직면한다.
그러나 박 수녀는 “교회 안에서 여성 노인은 손자를 돌보는 동시에 신앙을 전수해 줄 중요한 존재”라며 “65세 이상의 56.1가 여성인 점을 고려해 특화된 교육을 모색하고, 사회 주요 영역에서 할 일을 찾아줘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우리는 노인을 인생의 완성 단계에 있는 이들이란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노인 스스로도 노화를 장애로 여기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년의 영성을 완성해가는 이들이 자신의 체험도 공유했다. 유선자(로사, 72)씨는 “남편과 서울십대여성건강센터에서 음식봉사를 한다”며 “지금까지 나눌 수 있어 감사하고, 신부님들과 가족 응원 덕에 ‘손 큰 엄마’, ‘오지랖 유’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웃음 지었다.
남영희(클라라, 80)씨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로 살고 있다. 우연히 아이들에게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모집 공고를 발견해 하게 된 활동이다. 어린이들은 남씨의 옷차림새만 바뀌어도 “할머니 예뻐지셨다”며 매달린다고 한다. 남씨는 “뭐든 물어보면 모르는 게 없는 ‘홍 박사’란 아이가 지금도 보고 싶다”며 “그렇게 별명 붙여주며 아이들과 행복하게 소통하는 것이 좋다”고 전했다.
여성소위원회 위원장 손희송 주교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삶이라는 은총 속에 훌륭하게 신앙 안에 살아오신 여러분 모두가 아름다운 성경이라 할 수 있다”며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