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지금 _ 나와 너 그리고 우리 (7)
한 건설회사가 돈을 더 벌기 위해 자재비를 아껴 건물을 짓다가 그만 신축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를 냈다. 인사 사고가 발생하자 경찰에서는 건설 관계자를 불러 심문을 했다.
경 찰 : 건물이 무너질지도 모르는데 왜 노동자들을 대피시키지 않았소?
관계자 : ‘설마’ 무너지기야 할까 생각했지요.
경 찰 : 그럼 왜 회사의 간부들은 대피시켰소?
관계자 : ‘혹시’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설마’가 사람 잡는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는 말이 생각나는 유머이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라는 안심과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라는 근심 사이에서 살아간다.
‘설마’에 한 표를 던지며 사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만일에 대비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즐겁게 살아가지만,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반면 ‘혹시’에 한 표를 던지는 사람들은 언제나 만일을 대비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근심과 걱정으로 찌들어 있지만 적어도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 것이라는 안정감으로 살아간다.
설마’와 ‘혹시’ 사이를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타고난 기질적 차이일까? 아니면 상황에 대한 인식 차이일까?
성격심리학자들은 세상에는 타고난 낙관주의자와 회의주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사회심리학자 혹은 인지심리학들은 원래 타고난 기질보다는 상황에 대한 인지, 즉 판단이 더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출근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게으르거나 꾸물거리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지각에 대한 관대한 인식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약속 시간에 자주 늦는 사람들이라도 입사시험이나 면접시험에는 결코 늦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앞서 소개한 유머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안에 대한 중요성 판단이 결국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건설 관계자는 무의식적으로 회사 간부의 생명이 노동자들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고 인지했을 것이다. ‘혹시’하는 마음에 간부들은 대피를 시켰지만, ‘설마’하는 마음으로 노동자들은 계속 일을 시켰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그 생명의 가치는 모두 동일한 것이 아닌 듯싶다. 신분에도 차이가 있듯이 생명에도 차별이 존재하고 있는 현실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하다. 실제로 이런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5일, 전봇대에 올라 전선을 교체하던 고 김다운 씨가 고압 전류(약 22,900V)에 감전되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한전은 “우리는 외주처가 아닌 발주처라서, 원청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했다. 또한 새해를 맞아 11일째 되는 날 HDC 현대산업개발에서 신축 중이던 광주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 외벽이 붕괴되었다. 23층에서 38층까지 붕괴된 이 사건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크레인에 의한 추가 붕괴 위험이 예상되어 2주 동안 구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매일 2.4명이 산업재해로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1월 27일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하겠다고 공고하였다.
우리는 어떤 가치관과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일까?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생명’ 그 자체일 것이다.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 생명을 희생하는 문화를 극복하고 생명을 위해 재화를 사용하는 사회가 되도록 우리 신앙인들이 앞장서야 할 때이다. 생명이 신분처럼 등급이 매겨지지 않는 사회를 물려주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의무일 것이다.
글 _ 박현민 신부 (베드로,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목 상담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전문가연합회에서 각각 상담 심리 전문가(상담 심리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전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성필립보생태마을에서 상담자의 복음화, 상담의 복음화, 상담을 통한 복음화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상담의 지혜」, 역서로 「부부를 위한 심리 치료 계획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