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성에 촌집을 마련한 친구 덕분에 일 년에 한두 차례는 방문하곤합니다. 고교 동창인 지기(知己)와 아내들과 함께 하는 자립니다. 가끔은 남성들만의 오붓한(?) 시간도 갖긴 합니다만. 대부분 술과 안주가 어우러져 돈독한 하룻밤을 보내게 되지요.
몇 해 전 여름 방문 때도 어김없이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가누며 창문을 열고 바라본 시골 풍경은 여느 때와는 달랐습니다. 이른 아침에 맞는 바람은 시원하다 못해 상쾌했지만, 저는 마당의 텃밭과 너머로 보이는 한적한 시골 풍경이 좋아 한참을 선 채로 바라보았습니다. 한 해 한 해 갈수록 느껴지는 편안함이 다릅니다.
어느 종편 방송의 ‘나는 자연인이다’가 중년 남성들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1~2위를 다툰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저도 깊이 공감하는 사실입니다. 크게 눈길을 끌만한 내용은 없습니다. 두 명의 리포터(유명 개그맨)가 교대로 자연 속에서 세상과는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자연인’의 모습을 이틀에 걸쳐 르포하는 형식입니다.
허름하거나 혹은 개성 있는 자연인의 거처와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인데도 눈길이 가는 것은 시청자들이 경험할 수 없는 일상이기에 그렇습니다. 거기에 주인공의 사연과 속내가 어우러져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요.
바쁜 일상과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아마도 자연인의 삶을 엿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칫 한가하게도 보이는 자연인의 삶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듯 살아가는 남성들에겐 이상향일 것입니다. 실제 자연인들의 사연을 듣다 보면 상당수가 그러한 경쟁과 실패, 사람한테서 받은 상처 때문에 도시의 삶을 등진 것이어서 이질감 보다는 묘한 동질감을 안겨줍니다.
방송을 보면서 “자연을 찾는 모습은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의 피조물’이라고 정의해 본다면 인간 역시 자연입니다. 창조된 모든 존재가 자연입니다. 피조물 가운데 인간은 하느님의 속성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자연은 하느님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자연을 그리워함은 ‘신적 본성’(神性)을 그리워하는 것이고, 그 모습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피조물의 처지를 드러냅니다. 경쟁과 쟁취보다 상생과 이타적 삶이 더 위대한 것은 단순히 의미 있어서라기보다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글 _ 전대섭 (바오로, 전 가톨릭신문 편집국장)
가톨릭신문에서 편집국장, 취재부장, 편집부장을 역임했다. 대학에서는 철학과 신학을 배웠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바보’라는 뜻의 ‘여기치’(如己癡)를 모토로 삼고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