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만나기 전부터
자기 살을 뚫어 가지를 내고
가지마저 뚫어 잎을 피워 그늘을 만들었고
비바람을 막아 줄 우산을 펼쳐놓고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너를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난 너의 품으로 뛰어들기만 하면 되었다
너는 자신의 살까지 열매 속에 담아 나에게 주었다
사랑은 만나고 나서 하는 게 아니라
이미 마음 속 가득 채워놓아야 한다는 걸
너는 스스로 알게 해주었다
언제든 난 너를 떠나도 되었고
언제든 돌아가면 너는 나를 안아주었다
나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너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함명춘 (시인, 사도 요한)
1966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월간 「꿈」 편집위원이며,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활엽수림」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무명시인」 「지하철엔 해녀가 산다」 등이 있다. 편운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