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구 사무처장 현요안 신부님께서는 학교법인 신성학원(신성여자중ㆍ고등학교) 사무국장직도 겸하고 있다. 현 신부님은 한 해에 제주에서 학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학생이 10명이 넘는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말해주셨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숨 쉴 수 있는 탈출구를 만들어 줄 방법을 고민해보기를 요청하셨다.
여러 고민 끝에 ‘뮤지컬 대회’를 떠올렸다. 신성학원의 100년이 넘는 역사 안에서도 외부 팀이 들어와 공연한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새로운 콘텐츠로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그러다 맡게 된 것이 ‘5월 성모의 밤’ 기획이었다. 그러나 전교생의 5만이 가톨릭 신자인 상황에서 95의 학생들에게 성모의 밤을 이해시키기란 쉽지 않았다. 어느 학부모는 종교 강요로 받아들이기도 했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행사는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라이브 밴드가 학생들이 좋아하는 가요와 성가를 불렀고, 10명의 마리아를 찾아가는 에피소드 영상과 랩으로 하는 묵주 기도, 특히 하이라이트였던 것은 제주도에서 유명한 댄스팀을 초청한 공연이었다. 거의 모든 학생이 떼창과 열광적인 몸짓으로 호응했다. 한마디로 학생들의 묵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최고의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나중에 듣게 된 바로는 성모의 밤에 참여하지 않고 학원에 가려던 친구들이 돌아와 광란의 댄스파티에 함께했다고 한다. “이런 성모의 밤이라면 10월에도 로사리오의 밤을 하자”고 앙코르(?)를 요청하기도 했었다니, 즐거운 기억이다. 그때의 가능성은 자신감이 되었다. 문화예술에 끼가 있는 학생들을 찾고 그들이 꿈을 꾸고 숨 쉴 수 있도록 뮤지컬 대회를 준비하게 된 계기였다.
대회 이름은 ‘제1회 신성 뮤지컬 페스티벌’. 천주교 재단이 뮤지컬 페스티벌을? 처음엔 참가자들조차 의아해 했다. 그러나 우리는 무한 경쟁 속 학생들에게 전교보다 시급한 것은 기쁘게 숨 쉬고 살아가게 해주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콘테스트라는 말 대신 페스티벌이라고 한 것도 같은 이유다. 경쟁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축제’가 되고자 하는 바람이다. 포스터를 만들고 홍보를 하면서도 과연 몇 팀이나 신청할까, 기대와 동시에 조바심이 들었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도 21개 팀이 지원하고, 14개 팀이 본선에 진출했다. 워크숍을 마련해 전문 배우의 지도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고, 학생들이 주인공인 대회를 준비하려고 노력했다.
대회는 성황리에 잘 마무리됐다. 대회를 후원해주신 분들은 자신이 학생들의 성장에 도움이 됐다는 데 기뻐했고, 응원하러 온 친구들은 천주교에서 이런 대회를 하느냐고 신기해했다.
요즘 역사를 다룬 영화가 이슈가 되고 있다. 한 관객의 후기가 눈에 들어온다. “영화를 통해 역사를 배웠다.” 이것이 문화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삶으로 선택한 문화 선교의 역할도 그러할 것이다.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희망을, 숨을 쉴 수 없는 사람에겐 인공호흡기의 역할을 해주고,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에겐 옆에서 동행해 주는 것. 그리고 꿈을 응원해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의 씨앗, 즉 신앙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리라.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건 그분께서 하시리라 믿고 맡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12월 22일 제2회 신성 뮤지컬 페스티벌이 신성여중 샛별관에서 열린다. 이번에도 학생들이 주인공이 되고, 꿈을 키우며, 가장 아름다운 샛별들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박우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