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 간절한 청원은 성경의 모든 인물이 주님께 끝없이 드리던 기도의 모든 내용이며 주제였을 것입니다. 원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는 머리를 조아리며 땅에 엎드려 빌고 또 빌며 자신들을 멸하지 말아 달라고 빌었을 것이고,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말아 달라고 그토록 애원하였던 아브라함의 절절한 간청도 같은 내용이었을 것입니다.(창세 18,16-33 참조)
모세 또한 하느님을 만난 산에서 내려와 금송아지를 만들어 예배를 드렸던 이스라엘 백성을 그래도 광야에서 멸하지는 말아 달라고 그토록 애원하였던 간청(탈출 32,11-14 참조), 또한 같은 청원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 드렸던 기도 역시 죄인을 멸하지는 말아 달라는 간청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 앞에서 인간을 멸하지 말아 달라는 간절한 기도는 성경 전체에 흐르는 가장 중요한 기도이면서 인류가 끝없이 만나는 대재앙 앞에서 겸손하게 울며 통곡하던 기도였습니다. 인간의 절절한 호소가 담긴 눈물의 이 기도는 단 한 번도 멈추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유럽의 흑사병 대유행, 스페인 독감, 오늘날 사스나 메르스, 그리고 지금 코로나 팬데믹 때에도 인간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습니다. 그리고 참혹한 전쟁 중에도, 혹은 지진과 쓰나미, 기상 이변으로 인한 수많은 재난 앞에서 속수무책인 인간은 그저 망연자실 상태에서 하느님께 울부짖을 따름이었습니다. 죄많은 인간을 제발 멸하지는 말아 달라고….
그런데 인간이 저질러 놓은 참상 앞에서 인간은 그저 넋을 놓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그 모든 재앙 앞에서 인간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희망을 굳게 믿고 헌신적인 봉사와 투신의 박애정신으로 재앙을 이겨내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재앙을 거두시게 되는 것입니다.
알제리 오랑시의 흑사병 창궐의 유행을 배경으로 쓴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서 흑사병과 싸웠던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흑사병이 물러갔을 때, 재앙 한가운데에서 배운 것을 기록에 남깁니다. 이것은 죽음의 현장에서 인간이 보여준 분명한 사랑과 헌신에 대한 찬사일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해 두기 위하여.”(알베르 카뮈, 「페스트」, 민음사, 401쪽)
카뮈의 인간애에 대한 뜨거운 통찰은 계속 이어집니다. 세계의 대재난 현장을 직접 누비며 헌신적인 봉사와 사랑을 보고 느낀 미국의 레베카 솔닛은 그 감동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지진이나 폭격, 태풍이 닥치면 사람들은 대부분 이타심이 발동해 자기 자신과 가족,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타인과 이웃들을 보살피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재난이 닥쳐오면 인간은 이기적으로 돌변하고 공황에 빠지거나 야만적인 모습으로 퇴보한다는 관점은 그다지 사실적이지 않다. 세계대전 대폭격에서부터 홍수와 토네이도, 태풍에 이르기까지, 많은 재난 속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수십 년 동안 꼼꼼히 연구한 학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입증했다.”(레베카 솔닛, 「이 폐허를 응시하라」, 펜다그램, 10~11쪽)
그렇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낙원 에덴의 사랑스런 조화의 질서를 죄로 깨뜨렸듯이, 동생을 잔인하게 죽인 카인의 후손으로서 지금도 피조물에게서 피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인간들이 자신들 스스로 만든 재앙의 폐허 위에서 울부짖고 있지만, 그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느님 사랑의 모상이 깊게 새겨져 있어 선을 향한 몸살을 앓은 적이 많고 또 많았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하느님은 인간의 역사에서 당신의 자녀들이 울부짖으며 간청할 때, 당신의 분명한 답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비참한 처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이사 40,1;66,13)
하느님께서는 다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던 먼 노아 때의 약속을 꼭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요나는 다시 말을 건네옵니다.
“사랑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는 세상이 멸망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글 _ 배광하 신부 (치리아코, 춘천교구 미원본당 주임)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는 1992년 사제가 됐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그 교감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삽화 _ 고(故) 구상렬 화백 (하상 바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