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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기에르 주교의 선교 열정, 오늘날에도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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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첫 조선대목구장 ‘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소 주교.

서울대교구가 시복을 추진 중인데요.

브뤼기에르 소 주교의 생애와 선교 여정을 살피는 심포지엄이 최근에 열렸습니다.

이힘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초대 조선대목구장인 ‘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주교는 조선에 입국하지 못한 채 1835년 10월 중국 마가자에서 병환으로 선종하고 맙니다.

당시 조선은 극심한 박해로 인해 죽음이 기다리는 땅이었습니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조선 입국은 당시 조선 신자들도 만류할 정도였습니다.

서양인이라 금세 발각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브뤼기에르 주교는 박해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고통 받는 백성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와 교황청 포교성성 즉, 현재의 교황청 복음화부에 여러 차례 편지와 보고서를 보내 자신이 조선 선교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당시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며, 대부분 걸어 다녀야 할 정도로 사정이 열악했습니다.

더군다나 선교지를 프랑스에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포르투갈 선교사들의 견제와 방해도 있었습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시암대목구에서 선교사로 안정된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걸 정도의 험난한 여정임을 알았지만, 조선의 양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장 구요비 주교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이러한 점을 오늘날 사제들이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구요비 주교 /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장>
“우리는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시복운동을 전개하면서 동시에 장차 교회에서 일할 일꾼들을 양성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의 모범만을 배우고 영웅으로 만들어 화석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선교열정이 오늘날에 바람을 일으키도록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브뤼기에르 소 주교의 생애와 조선 선교 배경’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은 탄생에서 선교사 임명 등 다섯 개 주제 발표와 종합토론으로 진행됐습니다.

파리외방전교회의 1826년 1월 6일자 공동서한과 1832년 2월 공동서한, 브뤼기에르 주교가 쓴 1829년 5월 19일자 시암대목구 보고서가 우리말로 처음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1931년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을 계기로 브뤼기에르 주교의 유해 송환을 추진해 서울 용산성당 성직자 묘역으로 이장했습니다.

서울대교구는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 추진에 대해 지난해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만장일치 동의를 얻었으며, 올해 10월 12일에는 교황청 시성부로부터 ‘장애 없음(Nihil Obstat)’을 승인받았습니다.


CPBC 이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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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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