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의사로 봉사하는 친구의 병원에 잠시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마디가 부어있는 손을 보더니 관절염 초기 증상이니 이제부터 조심스럽게 아껴 쓰란다. 어렸을 때 TV에서 들었던 퇴행성관절염 광고에 나오는 할아버지 대사가 문득 떠올랐다. “얘야~ 빨래 걷어라~!”
코로나19 상황이 정점으로 향하는 가운데 본당 소임을 맡게 됐다. 처음 원고 청탁을 받고 무척 당황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코로나19라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며 사목 체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문장 실력도 없는데 괜히 독자들의 마음과 정신을 흐려놓지는 않을지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런 지면을 통해 모든 분께 표현할 수 있으니 매우 기쁘다. “모든 일에 감사하여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너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다.”(1테살 5,18)
부임하자마자 쏟아져 내린 눈으로 가득 찬 마당에 나가 새벽 미사에 나오시는 나이 드신 분들을 생각하며 홀로 빗자루 들고 치웠던 일에서 최근 성당 신축기금 마련을 위해 고랭지 배추 1만 포기를 김장해 판매한 일까지 지나간 모든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하느님, 땡큐!’
사목 경험이 전무했기에 부임 초기에는 원로 사목자들과 선배 신부님들을 찾아다니며 코로나19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혜안을 달라고 청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까지 활동을 멈추고 조용~히 쉬세요’였다. 본당 신자들에게도 코로나 상황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고 ‘할 수 없는 일’은 잠시 미뤄두고 신자들과 함께 눈물로 씨를 뿌리고 기쁨으로 거두며(시편 126,5 참조) ‘할 수 있는 일’만 좇아 기쁘게 해왔다.
그러고 나서 평소에는 김 가누도씨를 비롯한 몇몇 형제님들과 함께 가까운 산에 오르내리며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담소를 나눴다. “내일이면 죽을 몸 먹고 마십시다.”(1코린 15,32) 가누도씨도 그렇게 살아오셨단다. 하지만 2018년 신장염으로 2년 동안 투석하다가 천만다행으로 사랑하는 아내, 안나씨로부터 신장을 이식받았단다. 몇 달 동안 수술 후유증과 우울증으로 인해 지인들과 모든 연락을 끊고 방에서만 지내다가 다시 살아나야겠다는 신념으로 홀로 걷는 연습을 해야만 했단다. 여러 달에 걸쳐 한두 걸음 걷다가 겨우 쉬는 과정을 반복하며 비로소 생명의 소중함을 알았고 지금은 그저 살아 있다는 자체가 하느님께 감사드릴 뿐이며 남은 인생을 기쁘게 봉사하며 살고 싶으시단다.
누구나 죽을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을 마주할 수 있는 것처럼 내게도 그런 상황이 없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 타잔 흉내를 낸다고 썩은 칡덩쿨을 잡고 매달렸다가 바위 아래로 떨어졌던 일, 로마 유학 때 오토바이 사고로 잠시 의식을 잃었던 일, 세 차례의 허리 수술, 달려오던 뒤차가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던 내 차량을 들이받던 일 등. 지금도 숨 쉬고 꿈틀거리고 움직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마냥 감사드릴 뿐이다. 코로나19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본당 사목과 운영을 위해 많은 조언을 아껴주지 않으신 역대 사목회장님들, 성당 신축기금 마련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많은 신자들, 문장 실력도 없는데 끝까지 글을 읽어주시고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신 독자들에게도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8)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전주교구 문정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