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들은 채팅방에서 소통한다. 집이 80채쯤 있는 골목에 70명이 묶여 있으니 거의 다 들어와 있는 셈이다. 2020년 봄, 코로나19로 다들 집에 갇혔을 때 생겼다. 한 젊은 엄마가 ‘고립된 노인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으면 서로 돌봐 주자’는 쪽지를 집집마다 돌린 것에서 시작했다. 이웃이 연결되니 좋은 점이 많다. 거동이 불편한 이웃의 장을 봐주고, 쓰지 않는 물건을 교환하고, 필요한 정보를 교환한다. 가끔 기부활동도 한다.
남편은 첫해 겨울에 푸드뱅크에 식료품을 기증하자는 메시지를 올렸다. 집 앞에 물건들이 쌓였다. 통조림, 시리얼 같은 음식뿐만 아니라, 어린이를 위한 성탄 선물들도 가득했다. 어떤 이웃은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필요한 겨울옷을 모았고, 어떤 이웃은 가정폭력 피해 여성 쉼터에 보내는 생활용품과 옷을 모아서 전달했다. 누군가 제안하면, 누군가는 응답했다.
우리 학교는 곧 성탄 잔치를 한다. 바자를 하려고 하는데, 팔 물건이 부족했다. 남편이 골목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크리스마스 기부 제안: 안 쓰는 장난감 기증을 받습니다. 뉴몰든 한글학교의 성탄 바자에 보낼 겁니다. 이 학교는 뉴몰든에 있는 남한과 북한 커뮤니티가 함께 한국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곳입니다. 분단된 두 사회를 잇는 화해와 평화의 정신으로 운영합니다. 분열과 불일치가 만연한 이 시대에, 이런 조화와 일치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귀합니다. 금요일까지 기증을 받습니다.” 아침에 글을 올렸는데, 오전 중에 장난감이 스무 개나 들어왔다.
골목 커뮤니티의 느슨한 연대, 지속적인 교류, 가벼운 실천을 보면서, 나의 비장함을 돌아본다. 나는 남한과 북한 가정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는 우리 학교가 남북 화해나 평화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랐다. 끈끈한 연대나 가족 같은 관계를 꿈꿨던 것 같다. 그래서 자꾸 그에 맞는 ‘기획’을 하려고 했고 잘 안 되면 실망했다. 그런데 느슨한 연대, 이웃의 관계로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각자 일상을 살되, 서로에게 친절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돕고, 함께할 일이 있으면 가볍게 동참하면 된다. 그래야 오래 간다. 분열과 불일치가 만연한 시대에 함께 모이는 공간이 있는 것만 해도 귀한 일이다.
성탄 잔치. 아이들은 명랑하게 놀고, 평소에 서먹했던 부모들끼리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잔치에 주님도 즐겁게 함께하시길 기도한다.
이향규 테오도라(뉴몰든 한글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