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이들을 위해 라면이라도 끓여줄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벌써 40년 가까이 됐네요. 그 나눔이 벌써 이만큼 흘렀네요.”
겨울 정취가 물씬 풍기는 길을 따라 산 넘고 강 건너 자리한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원천리. 흙냄새, 풀냄새, 아궁이 나무 타는 냄새가 시냇물, 바람 소리와 어우러진 한적한 시골 마을에 돈 버는 장사보다 나눔을 더 생각하는 가게가 있다. 이젠 마지막 퍼즐 한 조각처럼 없어선 안 될 마을 풍경을 장식하는 ‘원천상회’다. 자선 주일, 이웃과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전국구 따뜻한 가게 ‘원천상회’ 최승옥(71, 빅토리아, 춘천교구 화천본당) 사장을 만났다.
가게 문을 연 것은 38년 전. 1980년대, 최승옥씨는 적은 돈으로 라면 하나 먹기 어려운 이들을 떠올리며 ‘착한 사마리아인’을 자처했다. 돈을 벌어야 할 가게를 열었는데, 나눔이라니. “제 나이 33살에 시작했죠. ‘자선’이라는 거창한 걸 생각하고 한 건 아니에요. 원체 뭔가를 나누는 것을 좋아해 가게를 열었는데, 생각만큼 도움이 안 될 때는 지금도 마음이 쓰려요.” 원천상회에는 그의 베푸는 삶이 고스란히 물들어 있다.
동이 채 트지 않은 새벽, 최씨는 생업을 위해 길을 나서는 이들을 위해 매일 가게 불을 밝힌다. 여름엔 오전 5시, 한겨울에도 오전 6시면 셔터를 올린다. 이웃에게는 반찬 한 가지라도 손에 쥐어보내고, 타지에서 고생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는 늘 먹거리를 한아름 안겨 보낸다. 지나는 사람들이 언제든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자판기 위엔 항상 동전이 놓여있다. 간단한 먹거리부터 문구류까지 없는 것 없이 팔지만, 나눔도 장사처럼 하는 것이다. 저녁으로 때우는 김밥 한 줄도 가게를 찾는 이들과 나눠 먹는다는 최씨는 그런 자신에겐 “특별한 것이 없다”며 수줍어했다. 오른손으로 장사를 하고, 왼손으로는 나누는 격이다. 남편이 하늘나라로 간 장례 때 며칠을 제외하곤 장사, 아니 자선의 마음을 멈춰본 적이 없다.
최씨의 나눔은 주님의 이끄심에서 시작됐다. “젊은 시절 집 근처 포도나무에 포도가 탐스럽게 열렸길래 근처 교회 목사님께 드렸는데 그 후에 꿈을 꿨어요. 주님 음성이 들렸는데, ‘나는 너에게 다 줬는데, 너는 나에게 포도 한 송이밖에 주지 않는구나’ 하셨어요. 큰 체험이었죠.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보니 제가 이렇게 사는 것이 모두 주님께서 주신 덕분이더라고요. 이후 주님께 받은 만큼 돌려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최씨의 나눔 철학은 ‘비록 가진 게 없더라도 그 가운데서 내 몫을 나누는 것’이다. “시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배불리 먹고 남 줄 게 어디 있느냐’고요. 내걸 다 취하기보다 아껴서 나누는 게 진짜 나눔인 것 같아요. 내가 쓸 거 다 쓰면 줄 수 없죠. 이런 걸 자선이라고 하는 게 맞죠? 하하.”
최씨가 자선의 삶을 계속 살아올 수 있었던 바탕엔 신앙이 있다. 18살 때 세례를 받았다. 당시 국민학교 졸업 후 타지 공장에서 일하며 지내다 지인을 따라 성당에 갔던 것이 계기였다. “성당 가서 신부님 말씀 듣고, 미사 참여하는 것이 그렇게 좋았어요. 그래서 교리 공부하고, 세례받았죠. 그땐 일 끝나면 무조건 성당에 갔어요.” 결혼도 성당에서 했다. 남편 집안은 종교가 없었는데, 최씨가 고집을 부렸다. 그는 “모든 것은 주님께서 해주신 일”이라며 “제게 모든 걸 가르쳐주신 분이 하느님”이라고 했다.
원천상회는 2021년 한 방송을 통해 알려지며 유명세를 얻었다. 가게는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어떻게 알고 해외에서 외국인 손님들도 찾아왔다. “하루에 수백 명이 왔다 갔는데, 라면을 190개까지 끓인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저를 배려해줬어요. 알아서 챙기고, 치우고, 닦고, 이웃들도 와서 도와주고. 그래서 무사히 유명해진 시기를 잘 지날 수 있었어요. 모두가 원천상회 사장이 돼줬죠.”
최씨는 작지만 큰 나눔의 뜻을 다시 전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추울 때 추위를 피하고, 더울 때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원천상회처럼요.”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