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일부 가톨릭 매체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 선출 규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평신도의 콘클라베(Conclave, 교황 선출을 위한 봉쇄 회합) 참여 방안과 추기경 회의 방식 변경 등을 검토해 달라고 교회법 전문가에게 의뢰했다는 것이다.
온라인 매체 더 필러(The Pillar)가 이를 처음 보도했다. 더 필러는 “교황이 교회법 수석 변호인인 잔프랑코 기를란다 추기경에게 교황 선출 규정에 관한 개정안 초안 작성을 맡겼다는 소문이 로마 전역에 퍼졌다”고 밝혔다. 다른 매체들이 뒤이어 관련 뉴스를 내보내자 온라인 댓글 창에는 찬성과 반대 목소리가 줄을 잇고 있다. 교황의 개혁 노선에 찬성하는 쪽은 환영하고, 반대하는 쪽은 성토하는 분위기다. 여론을 양극화하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가짜 뉴스의 폐해가 여실히 드러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가짜 뉴스’일 가능성이 높다. 이탈리아의 베테랑 언론인 마시모 프랑코는 초안 작성 의뢰를 받은 인물로 거명된 기를란다 추기경의 말을 인용해 소문을 부인했다. 그는 ‘콘클라베를 바꾸려는 유령 문서’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추기경은 ‘문서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누가 그 문제에 관해 의견을 물어본 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고 전했다. 또 교황의 한 측근이 “거짓말로 교회를 분열시키려는 악한 자의 행동”을 비판했다고 덧붙였다.
이 가짜 뉴스를 둘러싼 논란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교회에도 가짜 뉴스가 나돌고, 일부 사람들이 그것을 진실인양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국과 유럽 교회에 교황의 개혁 노선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 성향 고위 성직자들의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가짜 뉴스의 추측대로 교황이 평신도를 콘클라베에 참여시키더라도 그건 통치 리더십에 상처를 낼 사안은 아니다. 교황 선출 규정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96년 발표한 교황령 「주님의 양 떼」(Universi Dominici Gregis)에 따른다. 선거인은 만 80세 미만 추기경, 선거인 수 최대 120명 규정은 이 교황령에 근거한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은 2007년, 2013년 각각 자의교서를 통해 규정 일부를 수정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임자 4명 가운데 3명이 규정을 수정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금까지 「주님의 양 떼」에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았다.
비 추기경의 콘클라베 참여가 전례 없는 일도 아니다. 교황 선거권이 추기경으로 제한된 것은 1059년에 이르러서다. 그전에는 주교와 세속 군주, 각국 대표도 선출 과정에 참여했다. 대립 교황으로 인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소집된 독일 콘스탄츠 공의회(1417년)에서는 추기경 23명과 유럽 5개국 대표 30명이 선거인단을 구성해 새 교황을 선출했다. 프랑스ㆍ스페인ㆍ오스트리아의 가톨릭 군주들이 ‘후보 거부권’(Jus exclusivae)을 내세워 영향력을 행사한 역사도 있다. 교회가 군주들의 거부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20세기 초까지 세속 군주의 입김이 콘클라베에 작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교황은 함께 걷는 교회를 추구한다. “성직자 중심주의는 병적인 집착”(5월 25일)이라고 질타하며 평신도 위상을 높이고, 교회의 남성화는 “해결해야 할 큰 죄악”(11월 30일)이라며 여성 참여를 독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10월 세계주교시노드에도 사상 처음 평신도들을 참여시켰다. 그들에게 투표권까지 부여했다. 언젠가 교황이 평신도를 콘클라베에 참여시키기로 했다는 ‘진짜 뉴스’가 나오더라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김원철 선임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