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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 단상] 크리스마스 선물 / 김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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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을 맞아 집을 정리하다가 3년 전 일기를 발견했다. 얼룩진 눈물 자국도 이따금씩 보였다. ‘맞아! 그때 그 문제로 속이 타들어 갔어.’ 그 시절 고민은 이미 과거가 되었다. 지금 하는 고민도 3년 후, 아니, 1년만 지나도 ‘그 고민 참 귀엽네’ 싶을 것이다.

2023년 유엔 통계로 전 세계에는 약 80억 명이 살고 있다. 서로 다른 인류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든 인류가 고민 한 가지씩은 가지고 있다는 거다. 단지 그 주제가 다를 뿐. 한국에서는 치솟는 물가가, 미국에서는 총기와 마약, 노숙자 문제가,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은 전쟁의 소용돌이가. 이렇게 전 세계 80억 명이 저마다 다른 고민으로 살아간다.

그럼에도 오늘만큼은 전쟁도 멈춘다는 크리스마스이브다. 아기 예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을 떠올려 본다. 나는 조 퍼그의 노래 ‘Hymn #101’ 가사처럼 사는 중이다. “우리 인생은 그리 길지 않으니, 가고 싶은 곳을 안다면 그냥 그곳으로 향하라.”

고등학교 시절, 내가 하는 일이 기도이고, 세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당시 ‘꼰닭’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꼰닭이라는 별명은 체육대회에서 시작되었다. 친구는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사서 닭으로 잘 키워냈다. 키워본 사람은 안다. 그 작고 여린 병아리가 얼마나 달라진 환경을 견디기 힘들어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친구는 그 닭에 새끼줄을 꼬아서 체육대회 날 데리고 왔다. 도시의 체육대회에서 목에 새끼줄이 꼬아진 닭이 푸다닥 날아다녔다. 그날 이후로 친구는 학교에서 ‘꼰닭’으로 유명 인사가 되었다.

한번은 그 친구와 나란히 앉게 되었다. 당시 나는 YMCA 청소년 영화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다. 동아리 간사님 추천으로 신문사에 기고할 글을 쓰고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해서 하늘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친구가 말을 건넸다.

“그거 언제까지 쓰는 거야?”

“어? 이번 주 토요일까지.”

“어떤 작가가 그러더라. 작가가 됐다는 건 마감 시간의 고통을 이겨내는 거라고.”

친구가 내뱉은 한마디는 내 뇌리에서 친구의 ‘꼰닭’이라는 좀 묘한 이미지를 씻어 내렸다. 아니, 좀 멋져 보였다. 친구는 학교 도서관에서 시간 날 때마다 책을 빌려봤다. 책을 읽으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당시 나를 짓누르던, 마감 시간의 고통쯤이야 별거 아니라는 작가. 그런 초월한 사람이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문에 글이 실렸고 그 느낌은 묘했다. 마감 시간을 지키며 원고지에 꾹꾹 눌러쓴 그 느낌. 나의 감정과 영혼을 털어놓는 듯한 그 시간과 기억이 좋았다.

그래. 결국 나는 이 길로 오게 되었다. 아직도 무엇을 쓰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때 그 시절에서 별로 달라진 건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글을 쓰면서 나는 조금 더 기도하고 조금 더 나아가고 있다는 거다. 노트북을 열면 내 손의 근육과 신경이 머릿속 엉켜있는 카오스를 잘 갈무리된 코스모스로 써 내려간다. 내가 하는 일이 취미이자 놀이고 기도로 산다는 건 내가 받은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김미현 에스텔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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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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