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 해가 저물어간다. 생각해보면 올해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많이 만났다.
발달장애인들을 만나 그들이 겪는 남들이 모르는 어려움에 대해 들었고, 북한이탈주민에게서는 가깝고도 먼 남한 땅에서 살아가는 힘겨움에 대해 들었다. 산재 사망 노동자 가족에게선 이 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지를, 이른 나이에 가장이 돼 가족을 돌보는 청년들을 만나서는 그들이 꾸었던 꿈과 그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들었다. 본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대상자들을 만나서는 그들에게 한 알의 알약을 사기 위해 돈을 마련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들었다.
희망도 봤다. 발달장애인들과 북한이탈주민을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뛰는 사제들의 모습에서, 한부모 가정과 소년소녀 가장들을 몸과 마음으로 끌어안는 수도자들의 모습에서 말이다. 산재 사망 노동자와 유가족을 위해 거리에서 함께 외치고, 가족돌봄청년들을 위해 제 일처럼 나서는 평신도들의 모습에서도 희망을 봤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손을 내밀기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 있기에 확신할 수 있다. 희망은 있음을.
한 산재 사망 노동자 가족을 만났을 때였다. 내내 창밖만 바라보며 이야기했던 그 가족은 헤어질 때 이런 말을 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하네요.” 취재 후 돌아오는 길에 ‘얼마나 답답했기에 그 짧은 시간 들어준 것만으로 후련하다는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한 해 동안 만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떠올려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들을 더 이상 만나지 않고, 이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정말 살기 좋은 세상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