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여지없이 흘러 연말연시가 다가왔다. 새로운 기대와 설렘으로 송구영신을 꿈꾼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 대한 실낱같은 기대, 저성장을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경제, 저출생의 인구절벽과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다. 현실은 각박하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변화와 혁신에는 아픔과 고통이 따른다. 한 세대가 가고 다음 세대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기성세대는 허탈함에, 신세대는 암울함에 고개를 떨군다.
사회 곳곳에서 세대교체의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1970~1980년대생이 중역의 자리에 오른다. 내년 갑진년(甲辰年)은 베이비붐 세대(1950~1964년생)의 막내 격인 1964년생이 환갑을 맞는다. 현역에서 공식 은퇴한다. 뒷모습이 쓸쓸하다. 연금 수령까지는 퇴직 후 3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지출 명세서만 쌓인다. 이들은 유신독재와 외환위기 등 현대사의 거친 풍랑을 온몸으로 겪었다. 그럼에도 내 집 마련을 이루고 부모를 봉양하며 자녀를 세계적 인재로 키워냈다.
이후 1980년대 민주화의 주역인 386세대(1960~1969년생)가 등장했다. 낮에는 돌을 던지고 밤에는 막걸리를 마시며 민주화를 논했다. 그러나 이들을 조직화한 집단주의 문화는 X세대(1970~1979년생) 동생들의 개인주의 문화와 충돌했다. ‘X’는 ‘도무지 알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이전 세대와는 이질적인 모습을 보이며 세대 구분의 가장 큰 변곡점을 이뤘다. 풍요 속에 성장해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개성파로 첫 수능 세대이며 역사상 가장 젊은 40대로 불린다.
X세대 다음에는 Y세대로도 불리는 밀레니엄 세대(1980~1994년생)가 뒤를 이었다. 사회 진출을 막 시작한 젊은 직장인들이다. 디지털화의 첫 세대이지만 동시에 어린 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아날로그 감성을 쫓는다.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과 욜로(YOLO) 세대로 ‘인생은 오직 한 번뿐’이라며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중요시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태어난 세대를 Z세대(1995~2004년생)라 부른다. 이들은 주로 X세대의 자녀들로, PC보다 스마트폰과 유튜브에 익숙하다. 부모로부터 자유로운 가치관을 물려받아 다양성을 존중하고 삶의 균형과 실용성을 추구한다.
인간의 삶에서 세대교체는 숙명이다. 바통 터치는 앞에 가는 선수가 바통을 다음 선수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바통에는 돈과 권력과 명예만 담긴 것이 아니다. 경험과 기술, 삶의 올바른 방향성이 담겨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2000년간 세대를 이어오며 삶의 지표가 된 것은 제자들과 동고동락하며 이들을 키워낸 예수님의 사랑과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세대 간 갈등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세대 간 대화와 협업 등 관계 형성의 어려움 때문이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앞세대와 대화가 어렵고 생각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세대 간 앞모습과 뒷모습은 아름답고 정의로워야 한다.
나이와 시대 환경, 성장 배경에 따라 세대 차이를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위기와 갈등 상황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데 있다. 한 세대의 발자취는 나름 그 시대를 살아온 세대의 처절한 삶의 기록이고 역사다. 오늘 내가 걸어간 길은 훗날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앞선 세대는 권위주의적 기득권을 내려놓고 신세대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뒷세대는 퇴장하는 앞세대의 연륜을 포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서로의 언어로 다가가는 열린 마음의 대화가 필요하다. ‘라떼는 말이야’ 식의 훈시성 대화를 지양하고 적어도 신조어를 모른다고 기성세대를 구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