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환경 문제가 이토록 심각하게 대두되었을까요. 왜 우리는 나쁜 공기를 마시고 살아야 하고, 오염된 물 문제를 걱정해야 할까요. 왜 매년 기상 이변으로 수많은 이가 고통받아야 할까요.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 모든 문제가 ‘이윤만 추구하는 탐욕스러운 경제 모델’에 기인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9년 ‘온전한 인간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가 주최한 광업에 관한 모임의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에서 “우리가 목표를 잃어가고 본질적이지 않은 것, 더 정확히 말해서 좋지 않은 것, 나쁘게 만드는 것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 안에 참회하고 용서를 청하는 마음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목표를 잃고 있습니다. 본질적이지 않은 것, 우리 자신을 망치고 피폐에 이르게 하는 것을 더 우선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환경 문제와 기후변화 문제의 기저에는 탐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교회가 이 우주와 지구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우주,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자연환경을 ‘성사적’으로 바라봅니다. 여기서 불가피하게 신학적인 용어가 등장하였습니다. 우주가 성사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선 먼저 ‘성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성사는 ‘외적 행위로 나타나는 증표로 인간의 감각이 도달할 수 없는 감추어진 하느님의 은총이 감각적인 형태를 통해 전달되는 것’을 말합니다. 엄위하고 무한하신 창조주 하느님의 존재, 그리고 그 활동 및 은총에 대해 우리가 알기 위해선 감각적인 차원의 증표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는 성화의 은총을 수여할 때 사람이 감지할 수 있는 외적 상징을 은총과 결합시켜 사람을 거룩하게 만들고 계십니다. 결국 ‘보이지 않는 은총이 보이는 형태로 주어지는 것 이 성사’입니다. 따라서 ‘성사적 우주’라는 말은 ‘하느님 은총이 보이는 형태로 주어진 것이 우주’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성사 생활을 할 때 우리의 책임이 뒤따르듯, ‘성사적 우주’라는 용어 자체에도 ‘인간의 책임’이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이 ‘성사적 우주’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이 미국 주교회의 1991년 사목교서 「지구를 새롭게 : 가톨릭 사회교리에 비추어 본 환경에 대한 성찰과 실천으로의 초대」에 뚜렷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미국 주교회의는 다음과 같은 명제로 사목교서의 첫 문장을 시작합니다.
“전 우주가 하느님께서 거하시는 집이다.”
글 _ 이용훈 주교 (마티아, 천주교 수원교구장)
1979년 3월 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제품을 받았다. 1988년 로마 라테라노 대학교 성 알폰소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03년 주교로 서품되었다. 저서로는 「그리스도교와 자본주의」, 「삶에 대한 이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