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이 로마 성모 대성당에 묻힌다. 성모 대성당의 천장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처음 가져온 금으로 장식돼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니라 로마 에스퀼리노 언덕에 있는 성모 대성당에 묻히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자신의 87세 생일을 며칠 앞둔 12월 12일 과달루페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에 멕시코의 한 방송사와 한 인터뷰에서였다.
성모 대성당은 교황이 로마에서 가장 좋아하는 성당인 것 같다. 2013년 3월 교황에 선출되기 전 20여 년 동안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 보좌주교와 교구장으로 사목할 때, 그는 로마에 올 때마다 성모 대성당을 방문했다. 대성당 제대 왼쪽 바오로 경당을 찾아 ‘로마 백성의 구원자’(Salus Populi Romani)라고 불리는 비잔틴 양식의 성모 이콘 앞에서 기도했다. 교황으로 선출된 후에도 약 100여 차례 대성당을 방문해 이콘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이 성모 이콘에 대한 신심으로 교황이 성모 대성당에 묻히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유는 그뿐이 아니다. 게다가 교황과 성모 대성당의 관계는 이콘이 전부가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에서 이방인이다. 그는 1903년부터 1914년까지 재임한 성 비오 10세 교황 이후 로마에서 공부하거나 교황청에서 일한 적이 없는 첫 교황이다. 그래서 그가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닌 다른 곳에 묻히기로 결심한 것은 이해가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모 대성당에 묻히는 첫 교황은 아니다. 이미 6명의 교황이 그곳에 묻혀있다. 성모 대성당에 묻힌 첫 교황은 1216년부터 1227년까지 재위한 호노리오 3세 교황이다. ‘온화하고 평화를 사랑한’ 호노리오 3세 교황은 오랫동안 교황청에서 일했고, 교회의 사목적 개혁을 추진했다. 그는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의 회칙을 승인했다. 60여 년 뒤 프란치스코회 수도승이 교황이 됐고 그도 성모 대성당에 묻혔다. 프란치스코회 출신 첫 교황인 니콜라오 4세로, 그도 프란치스코 교황과 마찬가지로 교황청 개혁에 나섰다. 하지만 그가 한 일이라고는 교황청 일부를 로마에서 북쪽으로 80km 떨어진 리에티로 교황청을 옮기는 것이었다.
성모 대성당에 묻힌 교황 중 가장 유명한 이는 성 비오 5세 교황(1566-1572년 재위)이다. 도미니코회 출신인 성 비오 5세 교황은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파문한 것뿐만 아니라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라틴어 미사 경본을 출간한 것으로 유명하다. 성 비오 5세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 사이에는 두 가지 재미있는 연관성이 있다. 먼저 성 비오 5세 교황은 이탈리아 피에몬테 출신인데, 이곳 출신의 교황은 그가 유일하다. 비록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그의 부모는 모두 피에몬테 출신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성 비오 5세 교황이 1570년 코르도바교구(현재는 대교구)를 설정했는데, 예수회 총원은 아르헨티나 관구장으로 격변의 시기를 보냈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신부(프란치스코 교황)를 코르도바로 유배시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시절 겸손을 배우게 됐다고 회상했다.
성 비오 5세 교황의 무덤은 성모 대성당 중앙 제대 오른쪽에 있는 성체 경당 혹은 시스티나 경당에 있다. 시스티나 경당이라는 이름은 성 비오 5세 교황 옆에 묻힌 식스토 5세 교황에서 따왔다. 꼰벤투알 프란치스코회 출신인 식스토 5세 교황의 재위 기간은 5년 남짓이었지만 그는 추기경회의의 권한을 제한하고 오늘날의 교황청 조직을 설계했다.
그 다음으로 성모 대성당에 묻힌 교황은 클레멘스 8세 교황(재위 1592-1605)인데, 그는 예수회에 호의적이었고 1595년 예수회 창립자 로욜라의 이냐시오의 시복 추진을 승인했다. 사실 이냐시오 성인이 1538년 자신의 첫 미사를 봉헌한 곳이 성모 대성당이다.
성모 대성당에 묻힌 마지막 교황은 1667년부터 1669년까지 재임한 클레멘스 9세 교황이다. 예수회 학교 출신인 클레멘스 9세 교황은 교황청 국무원 총리를 역임하며 당시 성모 대성당 참사회 위원이었다. 그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결점은 바로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었다. 클레멘스 9세 교황은 매일 점심 12명의 가난한 이들을 초대해 함께 식사를 했다고 한다.
로버트 미켄스
‘라 크루아 인터내셔널’(La Croix International) 편집장이며, 1986년부터 로마에 거주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11년 동안 바티칸라디오에서 근무했다. 런던 소재 가톨릭 주간지 ‘더 태블릿’에서도 10년간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