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스페인을 떠나 40년 넘게 경남 산청 성심원에서 한센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유의배 신부(작은형제회). 최근 한 유명 TV 프로그램에 나와 비신자들의 마음도 움직였다. “예수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진정한 성직자”, “종교는 없지만 눈물이 나더군요” 익명성에 기대 누구든 악플을 달고 보는 온라인에서조차 유 신부를 비난하는 글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을 감동시켰을까. 정작 유 신부는 지난 4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저 함께 사는 것뿐인데 (알려져서) 민망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수도회의 소임을 충실히 수행한 것뿐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세월은 반세기 가까이 흘렀다. 그 사실만으로도 한센인에 대한 유 신부의 진심을 알 수 있다. 또 연민만으로 이어져 온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한센인에게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서로의 삶을 충만케 해주는 진심 어린 ‘만남’이 있었기에 그 울림이 더 크게 전해지지 않았을까.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1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박상훈 신부(예수회)는 “‘만남’은 교황의 생각을 가장 잘 드러내는 언어”라고 말했다. 여기서 만남은 단순한 친교가 아니라, 가장 취약한 이들에 대한 염려에서 시작하는 이웃과의 연대를 뜻한다.
수많은 언어로 정의를 말하고 연대를 부르짖는 시대다. 교회 역시 말씀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아무리 달콤한 언어와 생명의 말씀일지라도 진심 어린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자신과 주변 집단만 드러나는 모습을 발견한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지성인을 막론하고 말이다. 언어의 힘과 말씀의 육화는 결국 만남으로 이어져야 완성되는 단어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이 글 역시 예외가 아닐 것이다.
가장 가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기리는 이 시기, 두 어른이 초대하는 만남의 장에 조심스레 응답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