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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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없어 보여 멋진 삶(김혜연 도르가, (주)하나루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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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던 우리 부모님들의 시절, 밥때 방문한 손님은 대접받은 밥을 남겨 상을 물렸다고 합니다. 손님을 위해 밥을 양보하며 굶은 사람을 위해서였다고 해요. 아이에게 이 음식 귀했던 때의 이야기를 해주니, “이유~”라며 미간을 찌푸립니다.

저는 최근에 부모님 댁 한지붕 아래 삼대 가족을 꾸렸습니다. 추억이 중하고, 알뜰하여 버릴 줄 모르시는 부모님의 집은 구석구석 추억의 물건들이 가득했습니다. 삼대가 한 공간에서 같이 살기 위해서는 많이 버려야 했는데, 버리려 할 때마다 부모님과 마찰이 있었습니다.

궁핍과 풍요로움을 모두 경험하신, 여전히 알뜰하신 어머니는 커피믹스 봉지를 재활용하여 삶은 달걀을 위한 소금을 담습니다. 일회용기는 늘 재활용, 전단지는 접어 냄비 받침하고, 목 늘어난 양말로는 지갑을 만드십니다. 가구 틈마다 쇼핑백이 다시 써질 날을 기다리며 끼워져 있습니다. 때로는 창의적이시고, 때로는 궁상스러워 보입니다.

“오늘 학교에서 교과서 버리라고 해서 버렸어요.”

“야, 이상하다, 교과서를 왜 버리나?”

“이제 다 배웠다고요.”

이 글을 쓰는 지금, 중3 손녀와 할아버지의 대화가 들려옵니다. 책을 살 돈이 없으셨다던 할아버지는 왜 멀쩡한 교과서를 아직 졸업도 안 했는데 버리나 의아해 하십니다.

다투어 편리함을 경쟁하는 시대, 이미 저도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온라인 서비스의 빠른 배송이나,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물건을 사라는 광고를 볼 때면, 더 쉽게 더 빨리 더 많이 소비하고 또 쉽게 버릴 수 있는 삶이 더 익숙해질 것 같아 걱정됩니다. ‘싸니까 부담 없이 사서 써보고, 마음에 안 들면 버려도 부담 없다’, ‘빨리 받아보고 마음에 안 들면 반품하면 된다’는 인식이 만연해질수록 지구는 더 아플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구에게 무책임한 소비와 폐기가 점점 쉬워지고 있는 요즘, 우리가 지구와 공생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때로는 좀 없어 보여 닮고 싶지 않았던 우리 부모님들의 몸에 배어있는 알뜰함을 우리 생활 태도에 멋지게 창의적으로 장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꼭 필요한지, 내구성 있게 잘 만들었는지 신중하게 따져본 뒤 구입하고, 오래 사용하며, 버리거나 반품하기보다는 필요한 누군가를 찾아 넘기는 것이 최선인 것 같습니다.

“옛날이었으면 다 보물처럼 여겼겠지.” 화려한 선물 포장을 보시며 한 말씀 하시는 아버지. ‘나였으면 안 버리겠지만 너네는 깔끔하게 살고 싶어 하니 버리겠지’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 집에서 버리는 담당인 저도 ‘이 아까운 포장 상자를 버리지 않고 선물할 때 다시 쓰면 마음을 전하는 데 해가 될까?’ 고민해봅니다.

손님이 먹다 남긴 밥공기를 보며 그 마음을 고마워했다던 시절을 훌쩍 지난 요즘, 재활용된 허름한 포장에 담긴 선물을 주고받으며, 신중하게 소비하고 쓰던 물건을 나누어 다시 쓰며, 이제껏 아낌없이 나눠준 지구에게 우리의 작은 마음을 전했다는 안도감으로 함께 기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지구 덕에 부족함 없이 살아왔으니, 이제는 아파하는 지구를 위해 좀 부족한 듯 없어 보이게 사는 것을 서로 멋있게 봐줄 수 있는 눈이 함께 자라면 좋겠습니다.



김혜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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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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