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신부)가 소장해온 조선 후기 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가 국가지정문화유산인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12월 28일 「여지도서」와 겸재 정선의 초기작 「북원수회첩(北園壽會帖)」 등 총 8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여지도서」는 조선 영조 대에 각 군현에서 작성한 자료를 각 도의 감영을 통해 모아 완성한 지리지다. 각 읍지의 호구(戶口)·전결(田結) 등의 내용으로 보아, 1759년(영조 35)을 기준으로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전 지리지와 달리 「여지도서」는 각 군현의 읍지 앞에 지도를 첨부했다. 지도는 채색 필사본으로 1면 혹은 2면에 걸쳐 그려져 있다. 경기도와 전라도를 제외한 6개 도의 도별 지도와 영·진 지도 12매, 군현 지도 296매가 포함돼 있다. 군명(郡名)·산천(山川)·성씨(姓氏)·풍속(風俗)·창고(倉庫) 등 38개 항목에 따른 내용이 담겼는데, 「동국여지승람」 등 이전 지리지보다 항목이 확대된 것이다. 또 호구·도로(道路) 등 사회경제적 내용이 추가된 것이 특징이다.
문화재청은 “「여지도서」는 조선 후기 사회경제사와 역사지리 연구에 필수적인 자료로서 학술 가치를 지니며, 현존 유일본으로 편찬 당시 55책의 상태가 비교적 온전히 유지되고 있어 희소성과 완전성도 갖추고 있다”고 평했다. 문화재청은 「여지도서」 등 8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유산(보물)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여지도서」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73년 3월 22일 “서울대교구 삼각지성당 안에 있는 한국교회사연구소 서고에서 전질(55책)이 발견됐다”는 언론 보도를 통해서였다. 이때 학계는 「여지도서」가 백두산정계비 위치를 상세히 표시하고, 백두산을 한국 영토로 명기했다는 사실에 큰 관심을 보였다. 백두산정계비는 조선과 청나라 사이 국경을 정하기 위해 백두산 부근에 세운 경계비다. 학계는 또 「여지도서」가 압록강·두만강 일대 성곽 요새를 자세히 기록한 점도 주목했다. 당시 최석우(1922~2009, 초대 한국교회사연구소장) 몬시뇰은 언론 인터뷰에서 “100년 전부터 프랑스 신부들이 포교를 위해 국내 지리를 알고자 수집했던 것을 찾아내 1962년 정리, 보관해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