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회와는 다르게 의원내각제인 영국의 의회는 긴 벤치형 의자가 서로를 마주 보도록 좌우로 나뉘어 배치되어 있습니다. 좌우 벤치에 여야의원들이 나누어 앉습니다. 그리고 벤치 아래 바닥에는 붉은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과거 의원들 간의 토론이 물리적 싸움을 넘어 칼싸움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검 2개 길이의 간격으로 붉은 선을 그어 칼싸움을 방지했습니다. 여야 간의 물리적 싸움이 아닌 토론을 하라는 뜻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부산을 방문 중에 한 남성에게 습격을 받았습니다. 현장에서 쓰러진 이 대표는 서울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습니다. 피의자는 이 대표를 죽이려고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법치국가에서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범죄입니다.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정치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에 대한 커다란 위협입니다.
사건 이후 사람들은 가해자의 범죄 동기와 정치적 성향을 찾으려고 합니다. 사건의 배경을 둘러싼 음모론도 날개를 펼칩니다. 인터넷에는 억측과 정치혐오의 댓글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극단의 정치 유튜버들은 이번 사건을 더욱 부채질하며 확대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를 피습한 진짜 범인은 따로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서로 칼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커다란 전쟁터와 같습니다. 정치권은 진영논리로 편을 갈라놓습니다. 여야는 서로를 정치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없애버려야 할 악마로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악마화는 심해지고 서로를 향하는 말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습니다. 말하는 이들은 죄책감도 없었습니다. 혐오와 증오가 버무려진 막말을 해도 강성 지지층은 손뼉을 쳤습니다. 그 증오의 정치가 이번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먼저 정치권이 반성해야 합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정치를 펼쳐야 합니다. 지난 10일 병원에서 퇴원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상대를 죽여 없애야 하는 전쟁 같은 정치를 이제는 종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하지만 말로만 그치지 않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증오의 정치를 키우는 양당제가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다당제로의 선거제 개편을 추진해야 합니다. 누구보다 증오의 정치 피해자인 이재명 대표이기에 다당제로의 선거제 개편의 필요성을 잘 알 것입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증오에 피습된 민주주의 >입니다. 증오가 아닌 화해와 협력을 이야기하는 우리 정치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