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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 (149)너무나 자비로운 하느님 / 로버트 미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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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옥이 비어 있기를 희망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월 14일, 이탈리아에서 주일마다 방영되는 채널9 TV 토크쇼 ‘케 템포 케 파’(Che Tempo Che Fa, ‘날씨는 어떤가요’)에서 한 말이다. 교황의 이 말에 스튜디오는 환호로 가득 찼고, 340만 명에 달하는 시청자들 역시 뜨거운 감동에 사로잡혔다.

‘텅 빈 지옥’. 교황은 그것이 교리가 아니라 단지 ‘개인적인 생각’임을 전제했지만 온라인상의 일부 사람들은 그 말에 격하게 분노했다. 그들이 화를 낸 이유는 예수회 출신 교황의 말이 사람들을 엇나가게 하고 진지하게 신앙을 실천하는 것을 포기하도록 종용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만약 아무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뜻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선하다는 것은 무엇이고 율법을 따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1시간에 걸친 교황의 인터뷰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 진행자인 파비오 파지오는 “기도할 때 하느님의 얼굴을 어떤 모습으로 상상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고, 지옥에 대한 질문은 맨 마지막이었다.

교황은 자신에게 하느님은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너그러운 아버지’의 모습이라고 답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용서를 청하려고 했지만 미처 말을 하기도 전에 아버지는 그를 품에 안았다. 교황은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가 죄인임을 알고 계시며,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고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 죄에 구애받지 않으신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어 “하느님은 죄인과 동행하실까요? 아니면 단죄해 지옥에 떨어뜨리실까요?”라고 묻고 “그분은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주님은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파견하신 뒤, 세상을 단죄하지 않고 오히려 구원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짤막한 대화 속에서 이미 교황은 지옥이 비어있으리라는 희망을 표시했다.

부끄럽게도 교황의 지옥에 대한 설명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이들은 탕자의 비유 속에 나오는 다른 아들과 비슷하다. 그는 아버지가 너무 자비롭다고 화를 낸다. 그는 규율에 따라 순종했고 아버지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는 생각하기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동생은 집을 떠나서 방탕한 생활로 유산을 탕진했다. 아버지가 그를 다시 환대하고 잔치를 베풀며 값비싼 반지와 옷을 내어주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포도밭의 일꾼들에 대한 비유에서도 나타난다. 잠깐 동안만 일한 일꾼들에게 종일 애쓴 일꾼들과 같은 품삯을 준 포도밭 주인의 너그러움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다.

세상의 셈법으로 볼 때, 분명히 포도밭 주인과 탕자의 너그러운 아버지는 공평하지 않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이사 55,8) 하느님의 논리가 인간의 논리와 다르다는, 하느님의 정의는 인간이 옳다고 믿는 인과응보의 정의가 아니라 회복시키고 치유하는 정의라는 가르침을 우리는 성경에서 수백 가지도 넘게 찾을 수 있다.
누군가가 실제로 지옥(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의 절대적 소외의 상태)에 떨어지는가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제쳐두고라도, 여전히 역설의 문제가 존재한다. 우리 유한한 인간 존재는 역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인간은 범주적으로, 이원론적으로 생각하도록 훈련됐다. 그래서 선과 악이 하느님 계획의 일부로서 공존한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이는 ‘너그러운 아버지’의 무한한 인내심의 결과이기도 하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보자. 하느님은 왜 가라지(악)가 밀(선)과 함께 자라도록 허락하시는가? 교황은 우리 스스로가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들판임을 상기시켰다. 그는 인간의 마음속에 선과 악의 경향이 모두 있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수많은 신앙의 역설들과 맞서 싸운다. 우리는 나자렛 예수가 인간인 동시에 하느님이심을, 그는 죽었지만 성부께서 다시 생명으로 불러일으키셨음을, 죽음과 부활이 모든 만물의 삶의 양상임을,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됨을 믿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간적으로는 비논리적인 방법으로 신비스럽게, 가장 악하고 회개할 줄 모르는 죄인들까지도 영원한 징벌에서 구원하실 수 있음을 믿지 못할 이유가 무엇일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비록 교리는 아닐지라도 예수님께서 우화를 통해 우리가 죄를 범할지라도 하느님은 우리를 비난하지 않고 동행하는 ‘너그러운 아버지’이심을 보여주셨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그분은 우리가 용서를 청하기도 전에 우리를 안아주시는 그런 하느님이시다. 그러한 하느님이 누군가를 영원히 벌하신다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교황은 “예, 그렇습니다. 그런 하느님은 상상하기 어렵지요”라고 말한다.

로버트 미켄스
‘라 크루아 인터내셔널’(La Croix International) 편집장이며, 1986년부터 로마에 거주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11년 동안 바티칸라디오에서 근무했다. 런던 소재 가톨릭 주간지 ‘더 태블릿’에서도 10년간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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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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