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참사’. 절대 잊지 말아야 했던 그 이름을 뒤늦게서야 기억 저편에서 끄집어냈다. 참사가 일어나고 13년 만에야 마침내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기업 전직 대표 등이 유죄 판결을 받은 까닭이다. 항소심은 11일 무죄가 나온 3년 전 원심을 파기하고, 피고인 13명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정의와 질서가 바로 섰다는 기쁨도 잠시, 형량을 본 순간 숨이 턱 막혀 버렸다. 징역도 아닌, 금고 4년이 최대였다.
운 나쁘게 독성 물질이 든 가습기 살균제를 사서 썼다는 이유로, 8000명에 달하는 죄 없는 사람들이 병에 걸렸다. 그중 무려 1800명이 폐 질환이나 천식 등으로 너무나도 오랜 시간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고통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딱 한 번, 취재하면서 그들을 만난 적 있다. 2019년 1월 서울대교구 구요비 주교가 참사 피해자를 방문해 병자를 위한 기도를 바쳐줄 때였다.
피해자들은 모두 한때는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하던, 사랑받는 딸이자 아내이자 어머니였다. 하지만 특정 제조사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순간부터 그들은 병마와의 지독한 싸움을 강요당하게 됐다. 여러 차례 수술하고 폐 이식을 받아도, 인공호흡기를 꽂을 지경에 이르러도 좀처럼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살균제 제조사든 정부든, 힘 있는 그 누구도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너무나 외롭게, 너무나 아프게 투쟁해온 이들은 표정마저 잃은 모습이었다. 그 굳어버린 얼굴이 오열하거나 화내는 모습보다도 훨씬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5년 전 만났던 피해자 두 분의 이름을 검색했다. 박영숙씨, 2020년 8월 10일 투병 13년 만에 사망. 안은주씨, 2022년 5월 3일 투병 12년 만에 사망. 그들은 마지막까지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