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상담 봉사하러 가는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는 명동대성당 옆 가톨릭회관 3층에 있는 작은 공간입니다. 사무실에는 소파 세 자리, 신부님이 자주 앉으시는 삐걱거리는 바퀴 달린 의자 하나, 작은 탁자, 그리고 사무장님 책상이 오밀조밀 각자의 자리를 잡고 있고, 그 옆엔 상담실 한 칸이 마련돼 있습니다. 이곳으로 출근하는 금요일. 때로는 사무장님 홀로 평화롭고 꽉 채워진 따뜻함으로 공간을 지키고 계시는가 하면, 가끔은 신부님께 손님이 찾아오셔서 작은 사무실이 북적이는 활기로 채워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저도 내담자가 오시기를 기다리는 짧은 10분 동안 그 따뜻한 장면 속의 일부가 되어 새로운 이야기에 참여하기도, 함께 기도하기도 하지요.
지난 금요일에는 마침 내담자가 조금 늦는 바람에 신부님의 손님을 함께 맞이했습니다. 검은색과 흰색이 딱 좋은 비율로 섞여 멋진 회색빛을 이루어낸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빛나고, 그 머리카락을 감싼 베일이 참 잘 어울리는, 한 수녀님이었습니다. 수녀님은 브라질에서 10년 동안 활동하시고, 또 다른 남미 어느 나라에서 6년을 지내시다 한국에 오신 지 4년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작별 인사를 하러 오셨답니다. 또 브라질로 가신다고요. 저에겐 녹색 국기, 축구 잘하는 나라라는 단편적인 정보로만 기억하는 내 생애 가 볼 일이 있을까 싶은 이국일 뿐인 그곳으로 되돌아가신다고 합니다.
“거기가 좋으셨어요?” 묻자, 빙그레 웃으시며 “힘들었지요”라는 수녀님의 대답은 제가 예상하거나 짐작하는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제가 필요하다시니 가야지요.” 망설임 없는 담백한 그 대답에 저는 적절한 호응의 말을 찾지 못하다 그만 눈물만 벌컥 쏟고 말았습니다.
수녀님이 가실 곳은 대도시 상파울루에 당도해서도 버스를 몇 번이나 타고 10시간 넘게 달려 도착하는, 이름을 들어 본 적 없는 낯선 오지였습니다. 낙후되고 고립된, 하지만 그런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그런 곳. 치안이 불안정해서 늘 얼마간의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하는 곳. 그곳에 홀로 가시는 수녀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지, 감히 헤아려지지 않았습니다.
수녀님은 예전 홍성남 신부님의 후원을 기억하며 브라질로 가시기 전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들르셨다 했습니다. 동글동글한 다육이 식물 화분을 선물로 들고선 말이지요. 이제 가면 언제 돌아올지 기약이 없으니 인사드릴 분들을 찾아다니시는 중이라 했지요. 수녀님의 담담한 말씀을 들으며, 지금 마음이 어떠하실지, 제 깜냥으로는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고백하건데 수녀님을 잠시 뵌 그 날, 저는 참으로 오랜만에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저절로 기도가 흘러나왔습니다. 헌신과 봉사, 희생을 향해 담담히 걸어가시는 수녀님에게 36시간이 걸린다는 그 여정이 너무 고되지는 않게 해 주시길, 가끔은 된장찌개 한 그릇이라도 누릴 행복을 허락하시길, 그저 건강을 오래오래 지켜주시길, 바라고 바라며 간절히 두 손을 모았습니다. 따뜻한 기운을 남기고 돌아서시는 수녀님께 성함을 여쭙지 못했고, 나중에 사무장님께 들었습니다. 수녀님은 쏠라 수녀님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과 함께 쏠라 수녀님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최현정 아가시다(심리상담가·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