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로 삶의 터전 잃은 상인들292개 점포 중 227개 전소대전교구 서천본당, 위로금 전달
서천군 특산품으로 지정된 한산모시를 제작하는 김기자씨가 전소된 서천특화시장 일반동 앞에서 자신의 상가 자리를 가리키고 있다.
“깊은 잠에 빠져있던 새벽 2시, 시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시장에 불이나 난리도 아니라며 다급히 소리치더군요. 눈도 많이 오고 노인이라 운전할 수도 없어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형태를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탄 시장을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충남 서천특화시장 상인 송문순씨)
삶의 터전이 한순간 화재로 새까만 한 줌 재가 돼버렸다. 1월 22일 오후 10시 52분경 충남 서천특화시장에서 발생한 큰불은 상인들의 생업과 삶의 희망까지 단숨에 앗아갔다.
이 화재로 시장 내 292개 점포 중 수산동과 일반동, 식당동 227개 점포가 전소됐다. 이날 대설 특보가 내려진 데다, 강한 바람과 조립식 판넬 구조가 화재를 급격히 키운 것으로 밝혀졌다. 소방차가 도착했을 땐 이미 손을 쓸 수 없었다. 설 명절 대목을 앞두고 성수품을 많이 준비해놓은 터라 피해는 더 컸다.
상인들은 갑작스레 찾아온 고통에 힘겨워하고 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6일 만난 상인들은 “목숨만 빼고 삶의 터전을 모두 잃었다”며 망연자실해 했다. 전소된 수산동에 입점해 있던 송문순(요안나, 서천본당)씨는 “몇 번이고 눈으로 봐도 현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고 했다. 송씨는 서천특화시장이 기존 서천시장 현대화사업으로 2004년 9월 개장할 당시부터 입점해 시장에서만 20년, 노점에서 장사한 기간까지 합치면 30년을 선어와 건어물을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왔지만, 이렇게 한순간에 모든 걸 잃고 길이 보이지 않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울먹였다.
서천특화시장은 좋은 품질의 지역 특산품들이 입소문 나면서 전국 각지에서 오는 손님으로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단순히 상품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지역 사회의 정체성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장이었고, 시장 골목골목에는 전통이 깃들어 있었다.
서천군 특산품 한산모시 제작자 김기자(마리아, 서천본당)씨는 전소된 시장을 바라보며 “지역을 대표하는 작품들인데 지키지 못해 죄송한 마음마저 든다”며 울먹였다. 김씨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모시 작품으로 문화체육부관광부 장관상을 비롯해 수많은 공예대전에서 수상했다. 서천군 홍보관에 작품을 진열하고, 어르신들에게 모시 만드는 법도 가르치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김씨는 “피해 작품을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지만, 2억 원은 족히 될 것”이면서 “그보다 작품을 모두 잃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화재 발생 후 정부와 지자체는 시장 상인들에게 긴급지원금을 전달했다. 임시 건물을 지어 4월엔 장사를 다시 재개토록 돕겠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시장 건물을 온전히 새로 짓는 데엔 최소 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상인들이 사고의 충격에서 쉽게 빠져나오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서천본당 주임 박성준 신부가 상인들에 위로금을 전달하고 있다.
교회는 곧장 온정의 손길을 내밀었다. 대전교구 서천본당(주임 박성준 신부)은 6일 신자 상인 20가구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며 어려움을 듣고, 가구당 100만 원씩 위로금을 전달했다. 대전교구와 교구 한끼100원나눔운동본부도 가구당 300만 원씩 지원, 보령지구장 이정업 신부가 상인들에게 전달했다.
서천본당 주임 박성준 신부는 “처참한 화재 현장을 보면서 굉장히 심란했다”며 “설이 오기 전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드리고자 자리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당과 교구, 나아가 교회 전체가 상인들의 힘든 사순 시기를 함께 극복해 나간다는 마음으로 회복 때까지 곁에서 동반하겠다”고 약속했다.
김기자씨는 “교회를 비롯해 주변 이웃들이 진심으로 격려하고 도와줘 잃어버린 작품을 만회해야겠다는 열정이 생긴다”고 답했다. 송문순씨도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의 큰 힘이 된다”며 “주님께서 교회를 통해 주시는 도움으로 다시 희망을 갖겠다”고 말했다.
후원 계좌 : 농협, 351-0615-2674-93 (재)대전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
박민규 기자 mk@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