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상종이란 말이 있다. 하지만 교회의 추기경들에게도 이 말이 통할까? 좀 더 구체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서임된 추기경들은 과연 교황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최근에 벌어진 일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임한 추기경들 모두가 교회의 개혁과 쇄신이라는 교황의 비전을 열정적으로 추종하는 ‘프란치스코의 주교들’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가장 분명한 예로 교황청 신앙교리부의 선언 「간청하는 믿음」에 대한 아프리카 주교와 추기경들의 극도로 부정적인 반응을 들 수 있다. ‘축복의 사목적 의미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선언을 교황이 승인한 일에 대해 많은 아프리카 주교와 추기경들은 분노를 표출했다.
이 선언에 퇴짜를 놓은 주요 인물에는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대교구장 프리돌린 암봉고 베숭구 추기경이 있다. 암봉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추기경에 서임됐을 뿐만 아니라 교황을 자문하는 C9 추기경위원회의 일원이다. 암봉고 추기경은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주교회의연합회 의장이다. 그는 의장 명의로 지난 1월 강한 어조로 아프리카에서는 동성애자에 대한 축복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교황이 자신이 임명한 추기경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이다. 이후 교황은 인터뷰와 연설을 통해 「간청하는 믿음」을 옹호했고, 더 나아가 교회가 동성애자를 비롯해 ‘장애’가 있거나 ‘비합법적 결합’ 상태에 있는 이들을 더 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임한 다른 추기경들은 어떤가? 이들 중 어느 정도가 진정한 ‘프란치스코의 주교들’인가? 바꿔 말하면 얼마나 많은 추기경들이 특정 이슈나 교황의 사목 방향에 반기를 들고 있을까? 현 교황직이 막바지에 들고 있고 추기경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후임자를 뽑아야 하는 상황에서 이는 중요한 질문이다. 흔히들 투표권이 있는 추기경 중 대다수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임했으니, 이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을 이을 후임자를 뽑을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그 숫자를 보면 인상적이다. 2월 말 현재 80세 미만 추기경은 130명이다. 이중 92명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임했다. 나머지 27명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8명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서임했다. 세계주교시노드 16차 정기회의 제2회기가 열리고 있을 즈음인 10월 10일이면 추기경 9명이 교황 선출권을 잃는다. 그러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추기경은 91명,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추기경은 24명,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추기경은 6명이 된다.
향후 8개월 동안 선출권을 잃게 되는 추기경 중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측근들이 포함된다. 추기경위원회 위원인 미국의 션 오말리 추기경(6월 29일)과 파나마의 루이스 라쿤사 추기경(2월 24일), 베네수엘라의 발타사르 포라스 추기경(10월 10일)이다. 12월 24일이면 인도의 오스왈드 그라시아스 추기경이 선출권을 잃게 되고 콘클라베에 들어갈 수 있는 추기경은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제한했던 대로 120명이 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서임한 추기경 6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스트리아의 크리스토프 쇤보른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요한 지지자다. 하지만 쇤보른 추기경은 내년 1월이면 80세가 된다. 보스니아의 빈코 풀릭 추기경(78)은 큰 영향을 못 미칠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4명은 75세 이하로 젊다. 프랑스의 필립 바바랭 추기경(73)은 젊지만 4년 전 교구 내 성직자 성추행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교구장직을 사임했다. 크로아티아의 요집 보자니치 추기경(75)은 지난해 자그레브대교구장에서 은퇴했다.
특히 나머지 두 명은 유력한 후보로 떠오를 수 있어 주목할 만하다. 바로 헝가리의 페테르 에르되 추기경과 가나의 피터 턱슨 추기경이다.
에르되 추기경은 71세로 21년 동안 에스테르곰-부다페스트대교구를 이끌고 있다. 10년 동안 유럽주교회의연합회 의장을 역임하기도 한 에르되 추기경은 현 교황과는 반대 방향으로 자신의 교구를 이끌고 있지만 교황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지는 않는다. 지난 1월에는 조지 펠 추기경 선종 1주기 미사를 주례할 예정이었지만 취소했다.
턱슨 추기경(75)은 현재 교황청의 싱크탱크인 교황청립 과학원과 교황청립 사회과학원 원장이다. 1993년부터 가나 케이프코스트대교구장을 역임하고 2009년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으로 임명됐다. 이후 2016년 정의평화평의회가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로 개편되면서 2022년까지 장관으로 새 부서를 이끌었다.
아무튼 추기경들은 이미 프란치스코 교황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교황청 관측통들은 이 추기경들이 어디로 향할지 두 눈 크게 뜨고 시대의 징표를 찾고 있다.
로버트 미켄스
‘라 크루아 인터내셔널’(La Croix International) 편집장이며, 1986년부터 로마에 거주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11년 동안 바티칸라디오에서 근무했다. 런던 소재 가톨릭 주간지 ‘더 태블릿’에서도 10년간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