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구성작가라고 소개하면 많은 분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어떤 방송국에 소속되어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대부분 작가는 프리랜서입니다. 즉 어떤 방송국에서도 일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일이 없으면 모든 게 ‘0’인 상태가 된다는 얘기죠.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천직’이라 느낀 나머지 ‘작가’라는 장점만 크게 보였고 프리랜서가 감당해야 하는 ‘불안정하다’는 단점은 사소하게 보였나 봅니다. 평생 한 일터에서 교사라는 직업으로 근속하다 정년퇴직하신 아버지를 보고 자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이런 변화무쌍한 직업은 20년 차가 가까워 오는 데도 여전히 적응이 쉽지 않습니다. 늘 구직활동을 해야 했고, 기약 없는 공백 기간도 자주 생겼습니다. 그렇게 막연한 빈 시간 앞에서 저는 방황했습니다.
평일 미사에 참여했습니다. 빈둥거리며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저녁 무렵 미사라도 다녀오면 하루를 공쳤다는 허무함을 지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평소와 달리 중앙 통로에 봉헌 바구니가 떡하니 놓여있었습니다. 봉헌이 있다는 안내도 들렸습니다. 순간 낭패란 생각이 스쳤습니다. 지갑에 ‘현금’이 있는지 확인해 보니 5만 원 지폐 한 장. 신사임당님이 물끄러미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마음은 갈팡질팡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밖으로 나갈까?’, ‘낼까? 말까?’
갈등하던 저는 눈을 질끈 감고 떨리는 손으로 5만 원 지폐를 내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도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주님, 이 미사에서 제가 제일 많이 냈을 테니 저에게 좋은 걸 주세요.’ 당당하게 청원하면서도 제가 가진 모든 걸 주님께 맡기는 게 아니라 있는 것마저 빼앗겼다는 원망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봉헌이란 무엇인가?’란 의문이 들었습니다.
며칠 후 교리 시간에 신부님께 쪽지로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저는 ‘봉헌금은 얼마가 적당한가요?’란 질문을 써서 냈습니다. 신부님은 그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을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선 우리가 얼마를 봉헌하는지 상관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그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헌하는 겁니다.”
최근 두 달가량 또 공백기를 맞았습니다. 막연한 불안 속에 흘려보냈던 지난 시간과 달리, 이번엔 이 비는 시간 또한 주님께 봉헌하고 싶다고 기도드렸습니다. 저는 비록 쉬어서 지갑은 얇아지지만 제가 쉬는 만큼 누군가 더 일하고 벌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의 지평이 한 뼘 더 늘어난 듯 여유가 생겼습니다. 봉헌은 주님께 가장 좋은 것, 귀한 것만 드리는 거라고 여겨왔던 저는 ‘공백’마저 봉헌하면서 앞으로 주님께 더 많은 것을 기쁘게 드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제 마음은 풍요롭고 좋은 것으로 가득 찼습니다. 주님은 그날, 그 미사에서 청했던 제 기도를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김정은 (로사)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