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 죄를 사하여 주려고 /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미사의 핵심은 단연코 성찬제정입니다. 사제의 손으로 들어 올려진 빵과 포도주는 사제의 입으로 성찬제정문을 통해 예수의 몸과 피가 됩니다. 그리고 축성된 빵과 포도주는 영성체를 통해 세례받은 이들에게 전해집니다. 이 거룩한 사건에 예수님은 한 가지를 당부합니다. 기억하고 행하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한 기록의 의미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최후의 만찬을 대대손손 이어서 기념하라는 의미만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모든 것을 기억하여 오늘날의 우리가 그대로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예수의 사랑이 이천 여년 지난 오늘에도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어제를 기억한 일은 내일 일어날 행동의 나침판이며 표지판이 됩니다.
요즘 기억 저편에서 다시 끌어올려진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이승만 전 대통령입니다. 이 전 대통령의 생애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습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 한동훈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국민의 힘 관계자들은 관람 인증 릴레이까지 하며 영화 홍보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재평가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해 편향된 기억을 가지고 있다며 이제는 바로 잡자고 말합니다. 영화를 본 오세훈 서울 시장은 이참에 경복궁 옆에 이승만 기념관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시민들이 기억조차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세월호. 공영방송 KBS가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제작 중이던 특집 방송이 무산되었습니다. KBS는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라고 했지만, 방송시간은 선거가 끝난 이후로 예정돼 있었습니다. 여러 세월이 지났지만 세월호는 여전히 우리의 기억에 있어서는 안 되는 슬픔입니다.
영화 ‘건국전쟁’과 '세월호'만이 아닙니다.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비롯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까지, 윤석열 정부 들어 국민이 합의한 기억마저 바꾸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적을 지우는 등 친일에 맞선 독립투쟁보다 ‘반공 전쟁’으로 역사를 뒤집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시도는 나의 기억이 무조건 옳다는 오만함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시민들의 기억을 바꾸어 자신들의 뜻으로 미래를 만들려는 교만함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념과 정치라는 편협한 시각으로 기억을 바꾸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합니다. 그런 시도는 성공하지도 못하며 성공한다고 해도 다른 기억의 복수만을 불러올 뿐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역사는 이념이 승리한 역사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건국전쟁' 어떻게 볼 것인가”입니다. 시간의 주인이신 주님이 이끌어주시는 역사를 이념이 아닌 자비와 정의의 마음으로 바라보기를 바라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