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작가를 하다 보면 섭외 전화를 돌릴 때가 많습니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적합한 일반 사례자나 전문가를 수소문해 출연을 권유하고 일정을 조율하는 섭외 일이 아주 중요한 작업입니다.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지만 제작의 시작 단계에 있는 일이라 미룰 수도 없습니다.
그날도 섭외 전화를 정신없이 돌리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여전히 생생한,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사태가 났던 그 주간. 사흘 안으로 일본 후쿠시마 지진 현장에 사는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는 사람들을 찾으라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순간 눈앞이 깜깜했지만 망설일 시간도 없었습니다. 아침 생방송을 제작하려면 당장 현지 영사관에 전화해 생사를 확인하는 가족들과 연결해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렵게 연결돼 전화를 걸었지만 바로 거절당했습니다. 저랑 통화하는 그 순간에 중요한 연락을 놓칠 수도 있다며 황급히 끊는 분, 당장 자신을 헬리콥터에 태워 지진 현장으로 보내주지 않으면 협조하지 않겠다고 호통치는 분도 있었습니다. 죄인이 된 저는 죄송하다고 읍소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섭외 리스트를 한 줄씩 지워나갔습니다. 팀장과 팀원들은 제작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저를 보며 대안을 짜보려고 회의도 했지만, 생방송 시간만 째깍째깍 다가올 뿐 이렇다 할 뾰족한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연락처 하나만을 남겼던 그때. 저도 모르게 기도가 튀어나왔습니다. 전화번호를 꾹꾹 누르고 떨리는 마음으로 신호음을 들으며 당시 사무실 유선전화기의 돌돌 말린 전화선을 썩은 동아줄이라도 매달리듯 부여잡으며 눈을 감고 속으로 외치듯 기도했습니다.
“네, 주님. 네, 맞습니다. 주님! 전 이렇게 필요할 때 당신을 찾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런 저라도 제발 좀 도와주세요. 주님!”
신비로운 일이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분은 목소리부터 긍정의 분위기가 흘렀습니다. 그분은 지진 지역에 사는 어머니의 생존을 확인한 분이었습니다. 인근 초등학교 대피소 입구에 생존자 이름이 적힌 종이를 누군가 드론으로 찍어서 올린 사진을 봤다고 기뻐하며 인터뷰에 응할 수 있다고 촬영을 허락해 줬습니다. 게다가 천만다행으로 방송사에서 멀지 않은 지역에 사는 분이라 촬영에서 편집까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다음 날 아침 생방송은 본래 기획대로 차질없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어느 하나 빠짐없이 하느님의 도움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낮아지며 엎드렸던 그 ‘진짜 기도’에 하느님께서 더 크게 힘을 발휘하신다고 느꼈습니다. 감사 기도를 드리며 안도하면서도 뒤늦게나마 지진 피해 희생자들과 가족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 재난 현장 속 한가운데서도 하느님 도움의 손길이 닿았기를. 제가 잡았던 그 튼튼한 동아줄을 그들도 잡고 끝까지 놓치지 않았기를, 기도합니다.
김정은 (로사)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