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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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꿈 CUM] 회개 _ 요나가 내게 말을 건네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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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서는 구렁에서 제 생명을 건져 올리셨습니다.”(요나 2,7)

그 옛날 구약의 시인은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에 힘겨워하며 깊은 슬픔의 탄식을 이렇듯 아프게 써 내려갔습니다.

주님, 제 목숨을 건져 주소서. 
당신의 자애로 저를 구원하소서. 
저는 탄식으로 기진하고 
밤마다 울음으로 잠자리를 적시며 
눈물로 제 침상을 물들입니다.
(시편 6,5.7)

고통은 사회적 부조리한 경우로 생기는 경우도 많으나, 때론 자신의 욕망이나 잘못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발생하는 고통에 힘겨워 인간은 잠을 못 이루며 탄식의 눈물을 쏟아냅니다. 그 고통의 구렁에서 자신의 힘으로는 헤어 나오지 못하여 자멸하는 경우도 있고 요나처럼 절대자이신 하느님께 의탁하여 고통을 극복해 희망의 기쁨을 찾는 이들도 있습니다. 진정 살아날 길이 있음에도 자신의 힘만 믿는 자만은 고통을 더 깊게 만들 따름입니다.

저도 제 인생에서 스스로 만든 구렁을 헤어 나오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하느님께 부르짖었던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거룩한 사제 성소도 그런 부르짖음의 결과였는지 모릅니다.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러 부모님의 큰 근심덩어리였던 시절,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떨어져 상심의 세월을 막노동과 술로 지새우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전날 너무 많이 마신 술로 고통에 신음하며 방바닥을 기어다니면서 살려달라고 엉엉 울고 있을 때, 사방이 막혀 있고 방을 빠져나갈 출구의 문이 보이지 않아 죽을 것 같아 두려워하던 중 비로소 하느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저를 살려 주세요. 저를 살려만 주신다면 이 한 몸 당신께 봉헌하겠습니다.”
 

그렇게 흐느끼며 슬피 울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이 덜컹 열리며 순간 방안으로 강렬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술에 찌들어 방바닥을 기어 다니는 저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빛 속을 뚫고 이웃집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데 마치 천상의 노래가 제 귓전을 울리는 듯하였습니다. 

한편의 코믹한 드라마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겠지만 그때 저는 주님의 강한 손길과 음성을 들었다고 우깁니다. 여느 때 같으면 심한 소음으로 짜증이 났을 피아노 소리며, 어머니의 꾸중 소리가 모두 구원의 감미로운 소리로 들리는 황당한 개그 같은 구원과 부르심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수녀님은 수녀원의 당신 방에서 기도를 드리시면서 너무도 기쁜 황홀경에 빠져 예수님께 재롱을 피우며 노래를 한 곡 불러드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이런 청을 올렸답니다.

“예수님, 제 노래가 좋으셨어요? 그러면 예수님께서도 저를 위하여 노래 한 곡 불러주세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수녀원 옆으로 나이트클럽 홍보 차량이 확성기로 시끄러운 뽕짝 노래를 울리며 지나가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 수녀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좋아하시는 노래는 나이트클럽 노래예요.”

하느님의 구원은 늘 엄숙하고 장엄한 것은 아닙니다. 요나의 구원 이야기도 어쩌면 황당할 것 같은 코믹한 구석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사 인간의 통곡 소리에 희망의 말씀을 건네며 구렁에서 건지시는 때에는 마치 어린 아이를 다루시듯, 때론 배를 잡고 웃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 같을 때도, 어떤 때는 무서운 폭풍 같은 진노로 우리를 구원하실 때도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호렙산에서 자신이 죽게 될 처지를 원망하며 하느님을 찾을 때, 하느님께서 요란한 소리와 불길 속이 아니라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나타나시어 자신을 다독이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1열왕 19,9–12 참조) 이사야 예언자는 성전에서 거의 죽을 것 같은 두려운 광경 앞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거룩한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이사 6,1–5 참조)

이렇듯 여러 곤경 속에서 고통의 두려움 앞에 희망으로 만난 하느님 체험이 다를지라도 구원의 희망으로 다시 힘차게 살았다는 기쁜 뒷이야기는 한결같은 감동이 있습니다. 진정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 구원의 손길이 여러 모습이어도 우리의 확신에 찬 믿음이 우리를 살릴 수 있다는 신앙은 뜨겁게 간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두 귀를 잡고 스스로 오를 수 없듯이 구렁에서 스스로 올라올 수 없습니다. 하느님만이 나의 구원이심을 굳게 믿어야 한다며 요나가 말을 건네옵니다.

“저는 늘 자신만만한 교만으로 가득 찼던 인간이었습니다. 제가 진실로 깊은 구렁에 빠졌을 때, 비로소 제 능력, 제 힘의 한계를 깨달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나의 힘이시며 구원이십니다. 때문에 인생의 마지막 희망은 주님이십니다.”

 
배광하 신부

글 _ 배광하 신부 (치리아코, 춘천교구 미원본당 주임)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는 1992년 사제가 됐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그 교감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삽화 _ 고(故) 구상렬 화백 (하상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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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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