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팸 전화가 자주 걸려옵니다. 저는 거르지 않고 받습니다. 예전에 걸어두었던 섭외 전화일 수도 있고, 혹시나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올 수도 있기에 일단은 받고 들어봅니다. 광고, 투자 권유, 설문조사, 보이스피싱 등 많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거절하고 끊는 순간까지 최대한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합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받은 친절 때문입니다.
10여 년 전, 저는 새로운 일을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3개월 동안 스위스에서 허니문 가이드를 하게 된 겁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천국 같은 곳에서 신혼부부랑 기차를 타고 2~3일 동행하는 역할은 마냥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일을 맡겨주신 여행사 대표님은 들떠있는 저에게 딱 한 가지만 신신당부했습니다. “비행기만 놓치지 마라.”
그런데 그 일이 벌어지게 생겼습니다. 로마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게 한 커플을 제네바 공항에 데려다 주는 마지막 임무에 차질이 생긴 겁니다. 마지막 행선지에서 시간표를 잘못 보고 늦게 출발한 저의 실수였습니다. 비행기 시간에 맞춰서 아무리 기차를 여러 번 갈아타도 공항에 1~2분은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다는 시간 계산이 나왔습니다. 1초도 봐주지 않는 정확한 ‘시계의 나라’였기에 순간 지옥에 떨어진 기분이었습니다. ‘주님, 비행기가 연착되게 해주세요.’
아무것도 모르는 부부를 열차 안 저 멀리 앉혀놓고, 저는 따로 앉아 머리를 싸매고 끙끙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마주 앉은 할머니께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셨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상황을 열심히 설명하자 할머니는 바로 항공사에 연락해 이런 사정을 봐줄 수 있느냐고 물어봐 주셨습니다. 긴 통화를 마친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안 된다고 했습니다. 서둘러 다음 열차로 갈아탄 저는 여전히 안절부절못했습니다. 이번엔 제가 옆자리에 앉은 분에게 도움을 요청해봤습니다. 제 상황을 이해한 이 분도 공항에 연락해 한참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안 된다는 답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도움을 받고 나니, 제 기도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주님! 제가 이 부부를 끝까지 잘 챙길 수 있도록 지혜를 주세요.’
자책하며 괴로워하던 저는 안정을 찾았고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혼부부에게 솔직하게 시인하고 사과한 뒤 새 비행기 티켓과 그날 밤 머물 수 있는 호텔을 마련해주었습니다. 로마 현지 여행사에 변경된 일정을 연락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새벽, 제게 맡겨주신 어린 양 같은 부부가 무사히 로마행 비행기에 타는 걸 보는 순간까지 적지 않은 비용과 고생을 치르긴 했지만, 원칙을 지키시는 정의의 하느님과 구원의 손길을 건네주신 예수님을 다 만난 듯 마음은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순간의 실수로 ‘죄인’이 되었던 저는 어느새 ‘양을 지키는 목자’로 바뀔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친절의 옷’을 입으려고 노력합니다. 처음 본 사람, 길을 물어보는 사람, 얼굴도 못 보는 전화기 속 그 사람을 대할 때, 낯선 이방인에게 친절히 대해주셨던 그 순간을 떠올려 봅니다. 이번 사순 기간,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천사가 되어주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