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신앙단상] 천사를 만난 적 있나요?(김정은 로사, 방송작가)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요즘 스팸 전화가 자주 걸려옵니다. 저는 거르지 않고 받습니다. 예전에 걸어두었던 섭외 전화일 수도 있고, 혹시나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올 수도 있기에 일단은 받고 들어봅니다. 광고, 투자 권유, 설문조사, 보이스피싱 등 많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거절하고 끊는 순간까지 최대한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합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받은 친절 때문입니다.

10여 년 전, 저는 새로운 일을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3개월 동안 스위스에서 허니문 가이드를 하게 된 겁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천국 같은 곳에서 신혼부부랑 기차를 타고 2~3일 동행하는 역할은 마냥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일을 맡겨주신 여행사 대표님은 들떠있는 저에게 딱 한 가지만 신신당부했습니다. “비행기만 놓치지 마라.”

그런데 그 일이 벌어지게 생겼습니다. 로마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게 한 커플을 제네바 공항에 데려다 주는 마지막 임무에 차질이 생긴 겁니다. 마지막 행선지에서 시간표를 잘못 보고 늦게 출발한 저의 실수였습니다. 비행기 시간에 맞춰서 아무리 기차를 여러 번 갈아타도 공항에 1~2분은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다는 시간 계산이 나왔습니다. 1초도 봐주지 않는 정확한 ‘시계의 나라’였기에 순간 지옥에 떨어진 기분이었습니다. ‘주님, 비행기가 연착되게 해주세요.’

아무것도 모르는 부부를 열차 안 저 멀리 앉혀놓고, 저는 따로 앉아 머리를 싸매고 끙끙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마주 앉은 할머니께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셨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상황을 열심히 설명하자 할머니는 바로 항공사에 연락해 이런 사정을 봐줄 수 있느냐고 물어봐 주셨습니다. 긴 통화를 마친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안 된다고 했습니다. 서둘러 다음 열차로 갈아탄 저는 여전히 안절부절못했습니다. 이번엔 제가 옆자리에 앉은 분에게 도움을 요청해봤습니다. 제 상황을 이해한 이 분도 공항에 연락해 한참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안 된다는 답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도움을 받고 나니, 제 기도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주님! 제가 이 부부를 끝까지 잘 챙길 수 있도록 지혜를 주세요.’

자책하며 괴로워하던 저는 안정을 찾았고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혼부부에게 솔직하게 시인하고 사과한 뒤 새 비행기 티켓과 그날 밤 머물 수 있는 호텔을 마련해주었습니다. 로마 현지 여행사에 변경된 일정을 연락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새벽, 제게 맡겨주신 어린 양 같은 부부가 무사히 로마행 비행기에 타는 걸 보는 순간까지 적지 않은 비용과 고생을 치르긴 했지만, 원칙을 지키시는 정의의 하느님과 구원의 손길을 건네주신 예수님을 다 만난 듯 마음은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순간의 실수로 ‘죄인’이 되었던 저는 어느새 ‘양을 지키는 목자’로 바뀔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친절의 옷’을 입으려고 노력합니다. 처음 본 사람, 길을 물어보는 사람, 얼굴도 못 보는 전화기 속 그 사람을 대할 때, 낯선 이방인에게 친절히 대해주셨던 그 순간을 떠올려 봅니다. 이번 사순 기간,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천사가 되어주는 건 어떨까요?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4-03-13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11. 25

1베드 3장 8절
여러분은 모두 생각을 같이하고 서로 동정하고 형제처럼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며 겸손한 사람이 되십시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