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의회가 4일 여성의 낙태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개정안을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이로써 프랑스는 세계 최초로 낙태 권리를 기본법에 명시한 국가가 됐다.
그동안 법률 개정 추진에 반대해온 프랑스 주교회의(CEF)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CEF는 개정안 가결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수태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인 생명을 존중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사람들을 지지하기 위해 계속 봉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가톨릭 액션 단체들에 단식과 기도를 요청했다. 개정안 통과에 대한 저항의 표시다.
CEF는 표결을 며칠 앞두고 “낙태는 생명에 대한 공격이기에 여성 인권의 관점에서만 볼 수 없다”는 요지의 성명을 내고 의원들에게 반대표를 던져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교황청립 생명학술원도 당일 CEF와 같은 목소리를 내며 의원들에게 신중한 선택을 촉구했다. 하지만 상하원 합동 투표는 찬성 780표, 반대 72표로 허무하게 끝났다.
이날 파리 에펠탑 앞에서 투표 결과를 생중계로 지켜보던 낙태 찬성론자들은 개정안이 통과되자 폭죽을 터트리며 환호했다. 그 순간 ‘나의 몸, 나의 선택’이라 적힌 에펠탑 전광판에 불이 들어왔다. 반대로 ‘생명을 위한 행진’이 주최한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떨궜다. 그 시간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프랑스의 자부심, 전 세계에 보내는 메시지’라고 적었다.
이번 개헌으로 당장 가시적 변화는 없다. 프랑스는 이미 1975년 낙태를 사실상 합법화했다. 하지만 세계 최초로 낙태권을 헌법에 명문화한 상징성은 매우 크다. 프랑스는 시대 정신 혹은 현대문명 사조를 주도하는 나라들 가운데 하나다. 이번 결정이 낙태를 금지하거나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다른 나라에서 낙태 논쟁의 기폭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전 세계에 보내는 메시지”라는 마크롱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문구를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앞으로 곳곳에서 여성인권 운동가를 비롯한 낙태 찬성론자들의 목소리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올 11월 미국 대선에서 낙태 권리를 둘러싼 진보층(민주당)과 보수층(공화당)의 대립은 과거 어느 때보다 격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 낙태 찬반 논쟁은 생명 문제를 넘어 정치 쟁점이 된 지 오래다. 민주당 지지자는 대체로 낙태에 찬성한다. 개신교 내 근본주의 성향 우파는 이 문제를 선과 악의 대결로 규정하고 정치인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낙태 문제에 관한 한 쉼 없이 분명한 메시지를 내왔다. 교황은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이분법적 대립 구도로 보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수요일 교리교육 중에 생명을 거부하게 하는 현대의 우상들을 비판한 적이 있다. 교황은 “그 우상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생명을 제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돈, 권력, 출세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낙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등) 다른 권리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어머니 태중에 있는 인간 생명을 죽이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탈리아 병원약사회 회원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낙태는 살인”이라며 “여성들의 여러 상황에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이 낙태를 해결책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