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이주일은 자신의 얼굴마저 코미디 소재로 삼아 국민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던 그 시절 우리들의 ‘광대’다. 군인들이 나라를 다스리던 엄혹한 시절. 얼굴부터 몸짓에 이르기까지 웃음이 온몸에 배 있던 이주일 때문에 국민들은 행복했다. 어리바리한 말투로 툭툭 내뱉은 말은 금세 장안의 화제로 떠올랐다. ‘수지 큐’ 음악에 맞춰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손을 흔드는 오리춤을 동네 꼬마 아이들은 한 번씩 따라 해보았던 그때 그 시절이었다.
하지만 너무 나섰나. 이주일은 갑작스럽게 방송에서 퇴출당한다. 명목으로는 ‘저질 코미디언’ 딱지가 이유였지만, 대통령과 머리 모양이 닮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존엄하신 권력자를 닮은 이가 방송에 나와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며 떠들자 ‘대통령 각하’의 심기마저 경호하던 이들이 놀랐던 것이다. 반대로 이주일의 모습에 국민들은 낄낄거리며 해방감을 느꼈는데 말이다.
정권이 바뀌고 시대가 변하면서, 정치를 웃음 소재로 삼는 일은 이어져왔다. 하지만 권력은 불편해했다. 때론 ‘회장님’이, 때론 ‘텔레토비’가 정치와 사회를 풍자하면 권력은 방송 퇴출과 프로그램 폐지로 대응했다. 웃자고 한 일인데, 권력은 죽자고 달려들었다. 무엇이 양심에 그리 찔리는지, 개그를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였다.
텔레비전 시대가 지나고 넷플릭스 같은 OTT의 시대가 시작되었지만, 정치풍자 앞에서 권력은 여전히 웃지 못했다. 화면에 나온 이가 누군가를 닮았다는 이유로, 혹은 누군가를 따라 한다는 이유로 그 누군가는 불편해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 정보기관이나 경찰처럼 정부기관이 했던 일을 이제는 정치 팬덤이 한다.
‘시민(demo)’이 아닌 ‘팬(fandom)’의 마음으로 내가 ‘사랑하는’ 정치인을 지키는 것이 ‘국민의 명령’이거나 ‘애국의 길’이다. ‘토착 왜구’ 혹은 ‘종북좌파’의 조정을 받는 방송국에 팬은 전화 폭탄을 하거나 출연자에게 직접 혐오의 메시지를 보낸다. 자신이 사랑하는 정치인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하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지하는 ‘팬’은 정치인 결사옹위의 선봉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여전히 언론과 방송은 권력을 말할 때 눈치를 보고 가슴을 졸이고 있는데 말이다.
최근 대통령을 풍자한 한 OTT 프로그램이 화제다. 방송은 윤석열 대통령과 참모들이 함께 대국민 설맞이 인사로 부른 합창과 과잉 경호 논란이 일었던 이른바 ‘입틀막’ 사건을 풍자했다. 방송에서 윤 대통령을 닮은 이는 ‘풍자는 자신들의 권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자유롭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은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들이 정치풍자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풍자는 권리라고 답한 일을 꺼내 본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말처럼 방송과 언론은 편하게 정치를, 아니 권력자를 비판할 수 있을까.
대통령에게 소리치는 사람은 경호원들에게 입이 틀어 막혀 들려 나가고, 여당 대표는 방송 기상예보 숫자 1을 보고 선거 개입이라고 말하는 지금. 대통령 부인을 ‘여사’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방송국이 징계를 받는 지금. 대통령에게 이태원 참사의 책임이 있다고 말해 징계를 받는 지금. 지금 우리는 정말 대통령의 말처럼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가. 누군가 묻는다면 옛날에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며 웃겨야 했던 시대를 아느냐고 대답할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선거기간 투표소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유일한 공간이다. 앞으로 한 달 뒤에 우리는 투표소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 여당도 야당도 아닌 우리 주권자가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