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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하느님의 크기(김정은 로사,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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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믿으면 뭐가 좋아?”

어느 날 종교가 없는 친구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훅 들어온 질문에 당황하면서도 어떤 답을 할까 고심하고 있는데 친구는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나이 들수록 가져야 하는 게 종교래.”

모처럼 하느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친구를 성당에 초대했으면 좋았을 텐데,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잘 숨겼다고 여겨온 기복 신앙을 결국 들키고 말았다는 허탈감이 앞섰습니다. 괜히 오버해서 “난 도움을 받으려고 다니는 게 아니야”라고 했습니다. 친구는 더 놀랐다. “헐! 도움이 안 되는 데 다닌다고?” 저는 또 ‘센 척’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가 하느님께 도움이 되고 싶어서 다니는 거야.”

저 스스로는 꽤 만족한 답을 해놓고도 마음이 썩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친구는 저에게 종교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거든요. 친구가 하느님께 가졌던 그 일말의 호기심을 제 답이 ‘싹둑’ 자른 것 같았습니다. “성당에 가면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나고 네가 관심 있는 환경 관련 봉사 기회도 많을 거야” 등 초심자의 눈높이에 맞추면 더 나았을까요? 고민도 잠시. 하느님을 필요에 따라 축소시키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성당에는 좋은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 봉사는 성당 밖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그 순간이 오면, 어떻게 답하는 게 좋을지 저는 여전히 답을 찾고 있습니다.

“봉사자님,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가나요?” 어느 날 예비자 교리학교에서 말씀 나눔 시간에 한 자매님이 저에게 질문했습니다. 어이쿠. 이 자매님은 예비자교리를 받으면서 두려움이 커진 분입니다. 걱정하는 자매님께 “제가 아는 하느님은 그러실 분이 아니어요”라고 했지만, 어쩐지 그 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믿어야만 한다면 하느님은 자비도 없이 너무 엄격한 분이 되고, 믿지 않아도 된다면 세례를 받는 의미가 무색해질 것 같았습니다. 담당 수녀님께 여쭤봤습니다.

“자매님은 지옥이 어디라고 생각하세요?” 수녀님께선 ‘지옥’을 짚어보셨습니다. “신자가 되기 전에 지옥은 ‘장소’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신자가 된 후로는 ‘상태’, 즉 지옥이란 ‘하느님이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죠?” 수녀님 덕분에 저는 인생의 큰 숙제를 하나 푼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자매님과 이 기쁜 소식을 나누면서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그 마음 또한 성령의 은총임을 알려주었습니다. 성령의 은사 중 하나인 ‘두려움(경외심)’은 다시 말해서 ‘하느님 외에는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로 하느님을 내 필요에 맞게 ‘종’처럼 축소할 수도 있고 인정사정없는 ‘심판관’으로 무서워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건, 크든 작든 하느님의 존재를 의식하고 산다는 것은 언제든 주님을 찾거나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 각자에게 어떻게 응답해 주실지는 하느님의 선택이시니, 저는 다만 하느님께 다가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성심껏 환대하고 최선의 답을 함께 찾아 나갈 뿐입니다.



김정은(로사,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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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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