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낙태권을 헌법에 명시한 프랑스가 이번에는 ‘조력 자살’ 합법화를 추진한다. 잇따른 ‘생명 경시 행보’에 국내 생명 전문가들은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폐기할 대상으로 보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우려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0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력 사망’(조력 자살)의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조력 자살은 의료인 동의를 받아 치명적인 물질을 환자 스스로 투여하는 자살의 한 종류다.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는 이 법안은 ‘자신의 판단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성인’이 치료가 불가능하고 고통을 완화할 수 없는 질병을 앓고 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허용한다. 미성년자나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는 제외다. 프랑스 주교회의 의장 에릭 드 물랭 대주교는 마크롱 대통령이 일명 조력 사망법을 ‘박애의 법’이라 표현하자 ‘기만’이라고 일축하며 “전체 의료 시스템이 쉽고 비용이 적게 드는 죽음으로 향하게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국내 생명 전문가들은 “자신의 판단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성인이 대체 누구냐”며 “마크롱 대통령이 제시하는 조건은 객관적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오석준 신부는 “하루하루 급변하는 오늘날, 치료가 불가능하고 고통을 완화할 수 없는 질병이라도 인간이 단정할 순 없다”고 말했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되면 그 선택을 강요받는 일이 생길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치료법이 개발돼도 비용이 비싸 결국 조력 자살을 선택하고야마는 ‘사회적 2차 가해’가 대표적이다.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최진일 교수는 “우리는 자유를 ‘절대 권력화’하는 세상에 살며 정작 인간은 비인간화돼가고 있다”고 질타했다. 최 교수는 “김수환 추기경은 일찍이 ‘인간의 기계화’를 사회 문제로 진단했다”며 “생산 능력을 상실할 경우 인간은 버려지거나 혐오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네덜란드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고 공언했지만, 지난해 그 허용 연령을 만 12세 미만으로 확대했다”며 “이같은 결정은 사회와 국가를 유지하는 사회 규범과 가치관에 혼란을 가져오며 치명적인 해를 가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박예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