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드는 건 결국 나 자신이다.’
고등학교 시절, TV를 보다가 한 스포츠 광고의 카피 한 줄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15초 안에 마음을 사로잡는 카피라이터가 근사해 보였습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광고 동아리에 들어가 활동하고 각종 공모전에도 도전했죠. 많은 우여곡절 끝에 광고회사 인턴으로 최종 15명 안에 들었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었다는 기쁨도 잠시, 정직원이 되기까지 두 달의 평가가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멋진 카피라이터 선배들과 실무에 동참하게 된 저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어필하기는커녕 걱정과 불안에 사로잡혀 잔뜩 위축돼 있었습니다. 예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밤늦도록 경쟁 PT를 준비하다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퇴근하던 캄캄한 길, 달리는 택시 안에서 창 밖의 가로등을 촛불 삼아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 뜻대로 마시고 주님 뜻대로 해 주세요.’
결과는 탈락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세 명을 뺀 나머지는 정직원이나 계약직으로 채용됐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수없이 드렸던 그 기도는 진심이 아니었나 봅니다. ‘하느님 뜻대로’가 겨우 이런 결과라는 게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여 후, 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저와 함께 떨어졌던 그 두 명을 추가로 합격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15명 중 유일하게 저만 떨어졌다는 적나라한 현실. 혹독한 광야가 펼쳐졌습니다.
이쯤 되면 카피라이터가 되는 길은 곱게 접는 게 맞을 것 같았습니다. 갈 곳 잃은 저는 방황했고 신앙생활마저 부질없게 느껴졌습니다. 성심껏 봉사한 결과가 고작 이 정도냐며 마치 악덕 고용주를 보듯 십자가 상을 노려봤습니다. 번듯한 직장에 취업한, 소위 잘나가는 정직원에게만 ‘전능하신 하느님’이 찰싹 붙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냉담할 배짱까지는 없던 저는 신앙생활은 유지하면서도 마음은 꼬일 대로 꼬인 채 빈정거리고 있었습니다. ‘만약 내가 뭐라도 되면, 감사 기도밖에 더하겠어?’
시간이 흘러 어느새 저는 작가로 방송 제작진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제 원고는 5분에서 10분, 30분, 50분…. 점점 시간을 늘리며 전파를 길게 타게 되었습니다. 저는 말하기를 좋아해서 수다를 떨거나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나눌 때 늘 시간이 부족한 ‘투 머치 토커’입니다. 그런 저에게 하느님께서 ‘15초 광고는 너에게 너무 짧으니 넉넉하게 50분 방송 시간을 줄게’라고 하시는 듯했습니다. 저보다 저를 완전히 아시는 주님께 저는 결국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께 감사기도밖에 드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나 홀로 뚝 떨어졌다는 초라함에 몸서리치던 그 밤길에서도 주님은 제 옆에 딱 붙어계셨고, 성전에서 당신을 빈정대며 노려봤을 때에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은 저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비뚤어진 분노로 똘똘 뭉쳤던 흑역사도 지나고 보니 어느새 주님과 함께 빙그레 웃으며 꺼낼 수 있는 추억이 됐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한참 답답하고 더디더라도 제대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는 주님은 쭉 저와 발걸음을 맞추고 계셨습니다. 제가 볼 수 없는 큰 그림을 그리시면서 말이죠.
김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