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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돋보기] 충만한 하루

박민규 가롤로(신문취재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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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면 창조요, 눈 감으면 종말이라.”

어느 노(老) 수사의 말이다.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고 충실하게 살라는 뜻일 터. 일생을 그 단순한 신념으로 살아왔다는 나이 지긋한 수사의 얼굴에서는 참 묘한 편안함과 단단함이 느껴졌다.

진리를 추구하는 수많은 현자들은 하나같이 과거에 얽매이지도, 미래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도 말고 현실에 집중할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현실에 대한 불만과 자조 섞인 한탄이 새어나오기 일쑤다. 이를 다잡는 방법으로 많은 이들이 걷기를 추천한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거기에 신앙을 더한 순례라는 좋은 방법이 있다.

얼마 전 친한 후배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산티아고 순례를 떠났다. 순례 중간 보내오는 사진들을 보면 물집 잡힌 발이 안쓰럽기도 하고 어깨에 짊어진 짐이 무겁게 보이기도 하지만, 광활한 대지에 내맡긴 몸은 무척이나 홀가분하게 느껴졌다. 그는 지금 잠시 접은 생계보다 훨씬 더 값진 현실을 마주하는 중이다.

4대 종단 종교인들도 지난 21일 경기도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강원도 고성통일전망대까지 400㎞에 이르는 21박 22일간의 대장정 순례를 마무리했다. 종교의 차이를 넘어 ‘생명·평화’라는 하나의 가치로 모인 자리였다. 땅 위에서 하루를 온전히 보내며 싹튼 우정이라고 할까. 고된 일정으로 몸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그만큼 평화에 대한 염원도 자라나 서로를 이해하고 형제로 받아들이는 끈끈한 사이가 됐다.

대의를 향한 여정이든 나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든, 그 노력 끝에는 결국 순간의 감사와 하루의 충만함으로 만족하는 것을 본다. 가야 할 길은 계속 걸어가면서 말이다. 매일을 창조와 종말로 받아들이면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삶. 부활의 여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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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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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고 그의 의로움은 길이 존속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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