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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꿈 CUM] 회개 _ 요나가 내게 말을 건네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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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밑창으로 내려간 요나는 드러누워 깊이 잠들어 있었다.”(요나 1,5)

예수님께서는 살아 있지만 이기적인 삶과 위선에 가득 찬 삶을 사는 자들을 ‘죽었다’ 하시고(마태 23,27), 죽은 이를 잠자고 있다고 하셨습니다.(마태 9,24) 진정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닌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이미 죽었는데도 영원히 살아있는 숭고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작가 이문열은 자신의 작품 「필론의 돼지」에서 현대사회의 지식인들의 죽은 삶을 이렇게 꼬집고 있습니다.

“필론이 한번은 배를 타고 여행을 했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서 큰 폭풍우를 만나자 사람들은 우왕좌왕 배 안은 곧 수라장이 됐다. 울부짖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뗏목을 엮는 사람…, 필론은 현자인 자기가 거기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도무지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배 선창에는 돼지 한 마리가 사람들의 소동에는 아랑곳없이 편안하게 잘 자고 있었다. 결국 필론이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돼지의 흉내를 내는 것뿐이었다.”(이문열, 「필론의 돼지」, 열림원, 21쪽)

현자인 필론이 풍랑의 그 긴박하고 위험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할 수 있었던 것이 돼지처럼 잠을 잤다는 것과 예언자로 부름을 받은 요나가 멸망할 니네베 백성에게 회개를 외치지 않고 도망가다 풍랑을 만난 중에도 배 밑창으로 내려가 돼지처럼 잠을 잤다는 것은 너무도 닮았습니다. 이럴 때 현자 필론이든 예언자 요나이든 그들의 삶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그 같은 삶은 사람의 삶이 아닌 돼지와 같은 짐승의 삶인 것입니다.

현대사회의 너무도 긴박한 고통의 사건들…, 자연 파괴로 인한 기후재앙 속에서 울부짖는 창조물들과 인간의 긴박한 외침들, 죽어가는 지구의 헐떡이는 마지막 신음, 오랜 전쟁의 상흔으로 인한 피비린내의 참혹한 냄새, 여러 질병과 역병으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통곡의 죽음들, 마실 물과 먹을 식량이 없어 말라 죽어가는 어린 생명의 가엾은 눈빛들….

이런 끔찍하고 슬픈 현실 앞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살리려는 몸부림을 펼치지 않는 삶, 세상을 살리려는 투신의 연대를 살고 있지 않은 이기적인 삶, 짐승과 같은, 돼지처럼 살고있는 신앙인들을 향하여 이문열 작가는 다시 이렇게 비웃고 있습니다.

“제관들과 율법사들이 아름답고 희망에 찬 말씀을 소리 높여 떠들고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고통받고 죽어가지 않더냐? 말씀은 주린 자를 채우지도 못했고 헐벗은 자를 입히지도 못했다. 사람을 죄와 질병에서 보호하지도 못했으며 거기서 온 비참과 불행에는 더욱 무력했다.”(이문열, 「사람의 아들」, 민음사, 303쪽)

급변하는 현대사회, 질병과 가난과 두 차례 세계 전쟁으로 인한 깊은 상처를 입고 울부짖는 아프고 엄중한 현실 앞에서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성공리에 마친 바오로 6세 교황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 공의회의 신앙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랑이었음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옛 이야기가 우리 공의회의 정신을 이끌어 준 모범이자 규범이었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 「자비의 얼굴」,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10쪽)

그렇습니다. 현대사회는 강도를 만나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의 긴박한 처지와 같은데, 교회는 화려한 건물과 현란한 제의와 분향의 연기 속에 갇혀 있을 수 없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전례와 영혼이 없는 설교의 말에서 생기를 찾는 것은 더욱 불가능합니다. 슬픔과 죽음이 만연한 세상에 교회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그 속에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와 모든 신자들은 필론의 돼지, 요나의 돼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신의 안일만을 추구하고 자기의 자리에서 이기적인 안락의 평화를 살고 있다면, 그 삶은 이미 죽은 삶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고귀한 삶을 포기한 짐승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그 같은 삶을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요나가 또다시 말을 건네옵니다.

“사랑이 없는 삶, 실천이 없는 믿음을 살았던 제 삶은 죽은 삶이었습니다. 기껏 배 밑창으로 내려가 내 치부를 숨기며 나 혼자만의 이기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삶은 짐승과 같은 어리석은 죽음의 삶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숭고한 인간의 삶, 생명의 삶을 선택하고 살아야 합니다.”
 

배광하 신부


글 _ 배광하 신부 (치리아코, 춘천교구 미원본당 주임)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는 1992년 사제가 됐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그 교감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삽화 _ 고(故) 구상렬 화백 (하상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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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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