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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했던 순간 (2) 밥상머리 문제

[월간 꿈 CUM] 예수, 그 이후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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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 모두의 세례명(천주교 세례명 추천기) 바오로

바오로 사도가 단단히 화났다. 베드로 사도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엄중하다. “당신은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단죄받을 일을 했습니다. 위선적이십니다.”(갈라 2,11-14 참조)

바오로 사도의 입에서 ‘단죄’ ‘위선’ 등 자극적인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도 교회의 반석, 베드로에게 말이다. 심지어 “복음의 진리에 따르는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다”라며 독설을 서슴지 않았다. 바오로 사도와 베드로 사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문제의 발단은 먹는 일, 곧 ‘식사’(食事)였다. 바오로가 단순히 먹는 것 때문에 쩨쩨하게 베드로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식사만큼 공동체의 결속력을 공고히 하는 것도 드물다. 특히 고대 사회에서 함께 식사를 나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에는 함께 식사를 나눈 손님이 주인집 물건을 훔쳐서 도망갔을 경우, 주인은 하루가 지난 다음에야 추격을 시작했다. 함께 나눈 음식이 뱃속에 남아있는 동안에는 형제로 여겼기 때문이다.

당연히, 초기 교회 신자들에게 있어서도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예수의 이름으로 한 식탁에 앉는다는 것 자체가 큰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바오로가 화난 것은 바로 이 식탁에서의 문제 때문이었다.

베드로는 안티오키아 교회에 왔을 때, 처음에는 이방인 신자들(유대인이 아닌 그리스도교 신앙인들)과 함께 어울려 식사를 했다. 그런데 유대계 그리스도교인들이 안티오키아에 오자 베드로의 태도가 180도 바뀐다. 이방인 신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고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바오로가 단단히 뿔이 난 이유다. 물론 베드로의 이런 행동은 유대인들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교회 전체의 선익을 위한 판단이었을 수도 있다. 이방인의 밥상에는 유대인이 먹지 말아야 할 음식들이 있을 수 있었다. 유대인이 식사 규정에 어긋나는 음식을 이방인들과 함께 나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바오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실 골수 유대인은 어부였던 베드로가 아니라 유대 지식인이었던 바오로다. 율법을 지키는 문제에 있어서 한때 바오로는 베드로보다 더하면 더했지만 덜하지 않았다. 게다가 바오로의 기준에서 볼 때, 베드로는 정확히 모든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바오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유다인이면서도 유다인으로 살지 않고 이민족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민족들에게는 유다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갈라 2,14)

회심 이후 율법에 대한 바오로의 관점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바오로는 율법이라는 꽉 조이는 옷이 그리스도가 선포한 복음이라는 몸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결국 바오로는 율법이 아닌 믿음을 통한 구원을 더욱 강조하게 된다. 율법과 관련해 바오로 사도의 관점을 알 수 있는 성경 구절이 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 율법을 통하여 의로움이 온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갈라 2,15-21)

바오로는 이렇게 율법과 관련해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어정쩡한 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했다.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만약 바오로 사도의 확고함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까다로운 음식 규정으로 인해 맥도널드 햄버거도 먹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그리스도교 국가인 미국에서 맥도널드 햄버거가 탄생하는 일도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율법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적절히 섞인 종교로 변질됐을 수 있다. 초기 교회는 이렇게 아찔했던 순간을 롤러코스터 타듯 넘고 있었다.

그렇게 위태롭게 버티던 교회에 더 큰 시련이 다가온다. 로마의 박해, 이단과 이교의 난립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언급하기에 앞서 또 다른 한 축의 역사를 살펴보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재앙이 찾아온다. 로마의 예루살렘 침공이 그것이다. 유대인들은 이제 민족 전체가 말살될 수 있는 중대한 위기에 봉착한다. 예수는 이러한 유대인들의 환난을 이미 예고한 바 있다.(마태 24,2 참조) 그리스도교 역사와 무관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당시 세계사의 최대 핫이슈인 예루살렘 함락 사건을 건너뛰고는 이야기를 이어가기 힘들다.

예수 그 이후, 예루살렘에선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글 _ 우광호 (라파엘,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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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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