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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환 신부와 무지개가족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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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환 신부(池正煥, Didier t’Serstevens)는 1931년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그는 1950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뱅상 레브 신부(Vincent Lebbe, 1877~1940)가 세운 벨기에 선교협조회(La Soci?t? des Auxiliaires des Missions)에 들어간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가서 민중의 형제로서 그들과 함께 살기를 원했고, 그들에게 배워서 그들이 알고 있는 것들을 통해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그들과 함께하기를 바랐다.

 

지정환 신부는 1958년에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12월 8일 부산에 도착한 이래 전주교구 전동·부안·임실본당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하면서 특히 가난한 농민들과 동반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부안에서는 쓸개를 잃었고, 임실에서는 다발성 신경경화증을 얻었는데, 이것들은 이 땅의 가난한 민중들에게 ‘하느님의 빛’으로, 하느님이 보내 주신 ‘카리타스의 무지개’로 살면서 그가 받은 훈장이었다.

 

 

그는 임실 치즈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1976년대 초에 벌써 몸에서 마비 증상을 감지하곤 했다. 그러다가 1976년에 오른쪽 다리가 마비돼 걸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불편한 몸으로 임실 치즈 조합 활동을 정리하고 1981년에 벨기에 고향으로 가서 치료받았지만, 결국에는 완치가 불가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의사가 퇴원을 권유하면서 “일을 그만두면 더 악화될 것”이라고 조언했는데, 이 말을 희망의 메시지로 받아들인 그는 조금 나아진 몸 상태로 1983년 10월 13일 휠체어를 타고 다시 한국, 전주교구로 돌아왔다.

 

 

“이곳이 내 고향이다.” 전주교구로 돌아와서 자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정환 신부 입에서 저절로 터져 나온 말이다. “그래, 이제 여기에 뼈를 묻자!” 그는 자기가 하느님 안에서 살다가 어디에서 그분께로 돌아갈 것인가를 결단했다.

 

 

지 신부는 박정일(미카엘) 주교에게 장애인사목을 권유받았을 때 즉시 답하였다. “예.” 1984년 2월 그는 교구에서 장애인사목 지도신부 소임을 맡게 됐다. 그해 7월에 김영자(마르타) 등의 협력 속에서 지정환 신부는 박남숙(루치아)과 함께 첫 장애인 공동체를 동반해 갔다. 이들은 다음 해 3월에 공동체를 확장해 옮겼고, 이후 이 공동체는 ‘무지개가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1989년에 하느님 희망의 증거자 지 신부는 ‘무지개가족’과 함께 오늘의 완주 ‘소양면’(所陽面), 볕 따스한 마을로 옮겨 와서 삶의 기쁨과 희망을 일구어 갔다.

 

 

거의 20년 동안 무지개가족을 동반한 지 신부는 2002년 5월에 사회봉사 부문에서 호암상을 받았고, 다음 해인 2003년 7월에 은퇴해 무지개가족을 떠난다. 그는 호암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장애인들과 이들의 가족들의 교육을 위해 무지개장학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은퇴 후에도 무지개가족에서 멀지 않은 소양면 ‘별아래’ 집에서 살면서, 무지개장학재단 일과 19세기와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들이 남긴 자료들을 복원하는 작업 등을 하면서 하느님의 사제로 살다가 2019년 4월 13일 하느님께로 돌아갔다.

 

 

올해는 그의 선종 5주기이자 무지개가족이 탄생한 지 40년이 되는 해다. 그는 이 땅의 민중에게 하느님의 희망을 전하는 과정에서 장애를 얻었고, 자신의 장애를 장애인들을 섬기는 거룩한 기회로 삼아서 수많은 장애인들이 새 삶을 살도록 매개했다. 그의 장애인 동반 사목의 밑바닥에는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이고, 장애인이기 이전에 있는 그대로 ‘하느님에게서 온 한 사람’이라는 존재 중심 인간 이해가 자리잡고 있었다. 지 신부가 자신의 전 존재로 증거한 ‘존재 중심’ 장애인 동반의 전통이 오늘의 무지개가족과 모든 장애인 동반 기관들에서 참으로 아름답게 육화되고 승화될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선물’ 지 신부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글 _ 황종열 레오(가톨릭꽃동네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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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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